학창시절의 미술수업을 기억하시나요? 혹시 ‘눈으로 본 그대로 정확하게 그리라’는 과제를 받아본 적 있지 않으신가요? 과일, 꽃, 채소, 석고 동상, 그것도 아니라면 자기 손을 놓고 이리저리 구도를 잡아가며 화가 흉내를 내어본 경험, 분명 있으실 겁니다.

그런 기억 때문일까요? ‘현실과 닮아있는 그림이 잘 그린 그림’이라는 막연한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사진보다 더 사진 같은 극사실주의(hyperrealism) 작품들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요.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그런 선입견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할 겁니다.

실제 한 마드리드 왕립미술학교 학생이 이런 과제를 받았다고 합니다. 성모 마리아의 고딕 조각을 보고 ‘눈으로 본 그대로’ 정확하게 그리라는 과제였는데요. 왕립미술학교 학생이니 최대한 현실과 닮아있는 그림을 제출했을 것 같지만, 이 학생은 뜬금없게도 광고지에서 본 저울을 그려냅니다. 성모 마리아 조각과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림이었지요.

당황해 하는 교수에게 학생은 설상가상으로 자신이 ‘눈으로 본 그대로 정확하게 그렸다’며 이렇게 해명했답니다. “선생님께서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그 고딕 성모 상을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울을 보았습니다.” 이 학생이 바로 자타공인 ‘천재’ 미술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1904.5.11 ~ 1989.1.23)입니다.

그의 작품 중에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을 꼽으라면, 아마도 <기억의 연속성(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일 겁니다. 언뜻 보기엔 산과 나무가 있는 풍경화이지만, 그 풍경 곳곳에 반쯤 녹아 내린 시계가 걸려있다는 점에서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두통에 시달리던 달리가 시계가 녹아 내리는 장면을 보았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실제로 시계가 녹아 내린 것이 아니라 달리의 눈에만 그렇게 보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달리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달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실 나는 일생 동안 ‘정상성’이라는 것에 익숙해지는 게 몹시 어려웠다. 내가 접하는 인간들, 세상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인간들이 보여주는 정상적인 그 무엇이 내게는 혼란스러웠다. 내 생각에는 생길 수도 있는 일들이 절대로 생기지 않는 것도 의문이었다.”

달리의 작품에는 ‘초현실주의(surrealism)’라는 꼬리표가 붙습니다. 현실에서 벗어난, 현실적이지 않은 무언가를 그렸다는 의미이지요. 하지만 달리의 입장에선 그가 ‘눈으로 본 그대로 정확하게 그린’ 것에 불과한 건 아닐까요? 그렇다면 달리의 작품은 초현실주의가 아니라 극사실주의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그가 ‘초현실’을 대단히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가 남들과 다른 눈을 가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단순히 달리가 남들과 다른 눈을 가졌다는 점이 아닙니다. 달리의 천재성은 우리가 보는 ‘현실’과 그가 보는 ‘현실’의 차이(-)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해냈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을 달리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초현실주의자로서 나의 성공은 내가 초현실주의를 현실에 융합시키지 않는 한 아무 가치가 없을 것이다. 나의 상상력은 고전주의로 돌아가야만 했다.”

두 가지 다른 현실의 차이(-)에 주목함으로써 초현실주의라는 미술의 혁신을 이룩한 달리. 남들과 다른 눈을 가지고 광인같은 삶을 살았던 그는 우리 기억 속에 ‘광인’이 아니라 미술의 혁신을 이룩한 ‘천재’로 남을 것입니다. “광기 아니면 삶! 나는 언제나 이렇게 말한다. 늙어 죽을 때까지 생생히 살아 있을 나와 광인의 차이는 내가 광인이 아니라는 점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말입니다.

그의 지나친 자화자찬이 밉지만은 않은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요? “모든 교회의 종들을 울릴지어다! 허리를 구부리고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이여, 지중해의 북풍에 뒤틀린 올리브나무처럼 굽은 허리를 바로 세울지어다! 그리고 경건한 명상의 자세로 못박힌 손바닥에 뺨을 기댈지어다. 보라 살바도르 달리가 태어났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