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아이들과의 옥신각신. 육아 예능이 인기다
하지만 실제 육아는 그런 게 아니다
육아는 예능보다 공포영화와 닮아 있다
육아 예능이 대세다. MBC의 <일밤-아빠! 어디 가?>, KBS 2TV의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 SBS의 <오 마이 베이비>까지. 지상파 3사 주말 예능프로그램의 주인공은 아이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귀엽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아빠 미소’를 짓게 된다. 하지만<진짜 사나이>가 진짜 군대가 아니듯, 귀여운 아이들과 옥신각신하는 것이 육아의 전부는 아니다. 실제 육아는 간담 서늘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예능보다 공포영화와 닮았다.
그래서 준비했다. 무척 현실적으로 살펴본 육아의 공포. <납량특집 육아 호러 삼부작>.
시리즈 1. 내 안에 낯선 생명체가 자라고 있다
“내 배속에 낯선 생명체가 자라고 있다.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이 생명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괴롭다.” 영화 <에일리언>의 대사…가 아닌 어느 임산부의 고백이다. 임산부에게는 임신은 낯설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홑몸이 아니다’라는 말은, 바꿔 말하면 내 몸이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임산부가 되는 순간, 여성은 배 속에 있는 낯설고 두려운 존재에게 자기 삶의 주도권을 빼앗기게 된다.
임산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절대 안정 또 안정이다. ‘푹 쉴 수 있겠군’이라고 넘어갈 문제가 아닌 게 사실휴식이라기보다 감금에 가깝기 때문이다. 과도한 신체 활동을 삼가야 하니 집 안에만 들어앉아 있다. 못 먹는 음식도 많다. 맵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 금지, 커피 금지, 술 금지, 담배는 물론 금지. 심지어 케이크나 과일 같은 디저트도 되도록 피하는 게 좋다. 한마디로 먹을 수 있는 게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입덧이 심해지면 그나마 먹던 것도 못 먹어 기운이 더 빠진다. 심한 경우 병원 신세를 지기도 한다. 힘이 하나도 없는데 힘쓸 일은 늘어간다. 배는 점점 무거워져 계단 하나 오르락내리락하기도 버겁다. 아기는 배속에서 굴러다니거나 발로 엄마 배를 뻥뻥 차대서 선잠을 깨운다. 그 상황에서 남편이라고 편안할 리 없다. 보이지 않는 짜증이 집 안에 차곡차곡 쌓인다. <조용한 가족>이 남 일이 아니다. 무슨 일이 터질 것처럼 긴장감이 고조될 때 (배경음은 영화<사이코>의 바이올린 소리. 삐삑삐삑) 비로소 출산일이 다가온다. 아기가 태어나면 모든 고통의 굴레에서 해방될 줄 알았다. 그땐 몰랐던 것이다. 진짜 공포는 이제 시작이란 걸.
2. 도저히 탈출할 수 없는 미궁
출산이 임박하면 임산부는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수십 시간 비명을 내지르게 된다. 내면의 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짜 비명이다. 출산을 마친 산모는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그 상태로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아기를 돌봐야 한다. 젖을 물리고 소화를 시키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재우는 일련의 과정이 두세 시간의 사이클로 계속된다. ‘황혼에서 새벽까지’ 젖을 물리고 소화를 시키고 기저귀를 갈아준다. 비몽사몽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동안 때론 갑갑함이 든다. 대체 언제쯤 끝날까?
육아가 직업이라면 아마 이런 모습일 것이다. 하루 24시간 풀 근무에 주말도 휴가도 병가도 없다.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중요한 일을 혼자 처리해야 하는데 어디 물어봐도 정답이 없다. 힘들게 일하되 월급도 없고 성과 상여금도 없고 4대 보험도 없다. 더 끔찍한 건 일이 끝이 없다. 아, 한 가지 더. 모유 수유를 결정했다면 임신 기간에 지켰던 것들을 계속 지켜야 한다. 여전히 감금에 가까운 생활이 지속된다. 여기에 가사까지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공포영화 주인공이 속 편하지 싶다.
3. 세상만사가 위험해
영화 <데스티네이션> 시리즈를 보셨는지? 꿈에서 앞일을 예견하고 재난을 피한 주인공들, 하지만 ‘죽음’은 그런 게 어디 있느냐며 주인공들을 어떻게든 죽이려 한다. 분명히 사고는 사고인데 억지가 따로 없다. 빌딩 유리가 떨어져 목숨을 잃고, 목도리가 엘리베이터에 껴서 숨 막혀 죽고. 영화를 보다 보면 일상 속에 치명적인 물건이 얼마나 많은지 깨달으며 소름이 끼친다. 누워만 있던 아이가 기어 다니기 시작했을 때가 딱 그렇다. 아무 두려움 없는 아기에겐 모든게 흉기다. 테이블 모서리가 저렇게 날카로웠어! 포크는 뾰족해! 꺄아~
‘이제 위험은 끝났어’라며 안심할 때 또 다른 위기가 다가온다는 것 역시 육아와 공포영화의 공통점이다. 이유식을 잘 안 먹어 겨우 고쳐놓았더니, 잠투정을 심하게 하는 등 매일매일 구석구석 새로운 위기가 도사린다.
엄마가 가장 힘들지만 아빠 역시 쉽지 않다. ‘좋은 아빠’는커녕 ‘중간 아빠’ 정도만 되려 해도 고군분투해야 한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 일터에서도 성공해야 한다. 그래서 야근이나 주말근무도 불사하면 아이와 보낼 시간이 줄어든다. 아이는 “아빠는 맨날 밖에서 일만 하고 나랑은 안 놀아줘”라며 불평한다. 딜레마다. 역시 고군분투하는 수밖에 없겠지.
이토록 고생해 봤자 소용없다. 몇 년 후 아이는 엄마·아빠보다 ‘달님반 아인이’를 좋아할 것이다. 한때 당신만 찾던 아이는 이제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재밌다며 떠나갈 것이다. 그 모든 걸 알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못난 애비를 둔 딸에게 정말 미안하다!!!” 손을 쭉 뻗으며 소리쳐야 할 날이 올 테니까.
공포영화 속 주인공이 늘 그렇듯 나 역시 다가오는 공포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불과 몇 년 안에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육아에 대해 단 한 순간도 고민해보지 않았다. 잊지 마시라. 육아의 공포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