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데이는 사랑의 쟁취에 목매지 않게 함으로써 시스템을 벗어날 용기를 준다. 블랙데이는 인생은 혼자라는 슬프지만 타당한 진실을 직시하게 해준다. 이것이야말로 블렉데이의 정신(Spirit of Blackday)인 것이다.

2012년 3월, 대학내일 598호 지금 이 칼럼 코너에 “화이트데이가 어때서”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화이트데이를 기업이 만들어낸 마케팅이라며 비판하는 건 식상하다는 이야기였다. 3월에만 삼일절, 세계 여성의 날, 세계 물의 날 등 중요한 날이 많은데 왜 사람들이 화이트데이만 ‘자발적으로’ 열심히 기념하는 것일까? 어쨌거나 상대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날이 하나쯤 더 있는 건 좋은 일 아닌가? 그런 내용이었다.

오늘 주제는 4월 14일 블랙데이(Black Day)다. 솔로들이 자신의 처지를 짜장면을 먹으며 드러내는 바로 오늘 말이다. 만약 블랙데이를 두고 마케팅의 산물이라는 이가 있다면 오해라고 답해주겠다. 만약 상술이라면 블랙데이는 분명히 실패작이다.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와 달리 지명도도 낮고 반드시 챙겨야 한다는 의무감도 적다. 가족 외식의 대명사인 짜장면에 솔로들이나 먹는 음식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질 위험마저 있는데, 짜장면 판매업자들도 자신들의 소중한 짜장면을 두고 표정부터 어두운 솔로를 떠올리는 꼴은 거절할 게 분명하다. 당사자인 솔로 입장에서도 블랙데이는 별로 즐겁지 않다. 아무 이벤트 없이 2~3월을 넘긴 자신들, 특히 선물을 줬지만 자신은 받지 못한 불운한 이들이 그들의 외로움을 굳이 짜장면에 버무릴 필요가 있는가? 솔로들끼리 함께 짜장면을 먹는다 해도 기분이 나아질 리 없다. 예로부터 기쁨은 나누면 반이되고 슬픔은 나누면 배가 되는 법. 솔로들끼리 여럿 모여 봐야 더 외로울 뿐이다. 학교 잔디밭 앉아 대낮부터 짜장면에 고량주로 얼큰하게 취해서 “솔로가 편해!” 외치며 위로해봤자 주변인의 측은지심만 키울 뿐.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일견 서글퍼 보이는 블랙데이야말로 우리가 챙기는 수많은 날 중 높은 수준의 기념일이라는 점이다. 우선 기원부터 독특하다. 밸런타인데이처럼 성인(聖人)의 이름을 따온 것도 아니고, 빼빼로데이처럼 특정 날짜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도 아니다. 삼겹살데이처럼 특정 소비품을 표방하고 있지도 않다. 무엇보다 다른 어떤 비공식 기념일과 달리 이날은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지 않는다. 다른 수많은 기념일이 사람 사이의 관계에 중심을 두고, 가족이든 연인이든 그 관계의 개선을 도모하지만, 블랙데이만은 그 관계를 거절한다. 오히려 관계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인류에게 오래도록 고통을 안겨준 사람 사이의 배타적 관계의 가치를 부정한다.

당신이 솔로라고 치자. 흩날리는 벚꽃 아래 까르르 뛰노는 커플들을 보면서도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다. ‘저들은 저들, 나는 나. 커플이라고 무조건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야. 오히려 서로에 대한 속박 탓에 괴로운 커플도 많다고. 저들은 일종의 역할극을 하는 것일지도 몰라.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선물을 교환하며 저들은 행복한 커플 역할극을 펼치는 거지.’ 그러나 마음 한 켠에서 까닭 모를 고통이 느껴지는 건 피할 길이 없다.

현대의 친구 관계는 충분히 즐겁고 합리적이지만 그 관계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어떤 심리가 우리에겐 있다. 엄마와 자식 사이에서 흔히 발견되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관계 말이다. 우리는 그것을 연인에게서 갈구해왔다. 하지만 무조건적 사랑은 지금 어디에도 없다. 오래도록 잊고 지냈던 고통스러운 이별이 떠오른다. 그리고 지금 타인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데서 오는 고통이 폐부를 깊게 찌른다.

자본주의 사회의 성과물 상당수가 개인의 노력 여하에 일부분이라도 달려 있는 것과 달리 사랑의 성과는 근본적으로 노력과 관련이 없다. 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보통 내가 어떻게 해도 날 사랑하지 않는다. 드라마 속 해피엔딩을 들먹이는 이가 있다면 뒤통수를 후려치자. 우리는 경험적, 이론적으로 그게 가능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이런 상황을 맞이하여 솔로들은 ‘커플지옥 솔로천국’이라는 슬로건을 내거는데 그냥 어깃장처럼 들리는 이 슬로건은 의외로 깊은 철학적 뿌리를 갖고 있다.

민주주의 이념의 근간을 이룬 『사회불평등기원론』에서 장 자크 루소는 일종의 커플 지옥을 주장했다. “젊은 남녀들이 이웃이 되어 오두막에 살고 있다고 하자. 그러면 자연이 요구하는 일시적인 성적 교섭이, 거듭되는 상호 왕래로 말미암아 즐겁고 영속적인 또 다른 교섭을 낳게 된다.” 이렇게 서로 만나기 시작한 사람들은 곧 “서로 만나지 않고서는 살지 못할 지경”이 된다. 쉽게 말해 매력적인 남녀가 서로 눈이 맞는다는 이야기다. 여하튼 이 과정에서 남녀들은 “저마다 남을 주목하고 자기도 주목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여, 이윽고 남들에게서 존경을 받는 것이 하나의 가치를 갖게” 된다. “노래를 가장 아름답게 부르고 춤을 가장 잘 추거나 얼굴이 가장 잘생긴 사람, 가장 억센 사람, 재주가 가장 뛰어난 사람 또는 말을 가장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 존경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때 단지 행복감의 표현이었던 사랑과 함께 질투가 싹트게 되고, 어느새 노래와 춤은 경쟁해야 할 기술이 된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인류 최초의 이 선택을 통해 한편으로는 “허영과 경멸”이, 또 한편으로는 “수치와 선망”이 생겨났다고 루소는 말한다. 그는 “이것이 불평등을 향한, 그리고 악덕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도 말했다. 즉, 커플 탓에 지옥이 펼쳐졌다는 설명이다.

루소의 말을 염두에 두고 사랑의 기념일들을 뒤돌아보자. 구애를 위해 값비싼 물건을 소비하는 것은 개인적 악덕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이 꼴로 만든 원인으로 이해될 수 있다. 조금 더 좋은 조건으로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자본주의 세상에서 통하는 능력을 키우고, 외모 중심주의 세상이 바라는 외모를 가꾸게 되면서. 우리는 힘들고 불행해하면서도 사랑의 쟁취를 위해 고난을 감수한다.

반면 블랙데이는 단 하루일지언정 이 시스템에서의 탈피를 의미한다. 솔로임을 당당히 자인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꾸미기 위해 시스템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블랙데이는 인간은 인생에서 혼자라는 슬프지만 타당한 진실을 직시하게 해준다. 이것이야말로 블렉데이의 정신(Spirit of Blackday)인 것이다.

솔로들이여. 블랙데이의 정신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솔로가 편해!” 수준이 아니다. 시스템에 대한 적극적 저항이다. 솔로라면 당당하게 블랙데이를 기념할 필요, 아니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어두컴컴한 세상을 구원하는 길은 여러분의 검은 짜장면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솔로들이여,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