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이 어디냐는 질문은 국적을 묻는 말이 아니다 조국이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믿음을 묻는 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조국은 적어도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매국노로 몰아붙이는 조국은 아닐 테다

“왜 눈곱은 꼬리가 아니라 머리에서 나오는 걸까?” 일본드라마 <료마전>에서 사카모토 료마가 던진 질문이다. 일본어로 눈곱은 메쿠소(目糞),다시 말해 ‘눈에서 나오는 똥’ 인데 왜 똥이 꼬리(눈 뒤꼬리)가 아니라 머리(눈 앞꼬리)에서 나오느냐는 것이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는 친구의 비꼼에, 료마가 안 그래도 요즘 이래 저래 고민이 많다며 내놓은 대답이다.

나의 조국은 어디인가? 요즘 내가 하는 고민이다. 정치권에서 조국이 어딘지 묻는 게 유행인지라 나도 한번 생각해보기로 한 것이다. 쓸데없는 짓이냐며 핀잔 들을지도 모르겠지만 최소한 눈곱보다는 고민 해볼 만한 주제가 아닌가. 눈곱만큼의 관심을 두고 국어사전에서 ‘조국’의 뜻을 찾아봤다. ①조상 대대로 살아온 나라 ②민족이나 국토 일부가 떨어져 딴 나라에 합쳐졌을 때, 그 본디의 나라 ③자기의 국적이 속해있는 나라. 뜻이 세 개나 되다니! 머리가 더 복잡해진다.

조국이 어디냐는 질문은 조국의 정의에 따라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간다. ① 조상 대대로 살아온 나라: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식민지, 대한제국, 조선쯤 되지 않을까. 삼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아버지 쪽은 백제(충청도), 어머니 쪽은 신라(경상도)가 되니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게다가 송(宋)씨는 몇 백 년 전에 중국에서 건너왔다는 설도 있다. 긴 역사적 안목에서 보면 우리 모두 다문화가정인 셈이다. 그러니 ‘조국이 어디인가?’라는 질문이 만약 조상 대대로 살아온 나라가 어디냐는 뜻

이라면 좀처럼 대답하기 어렵다. 조상의 범위부터, 시대별국경의 성격까지 따져봐야 하는 난해한 문제다. ② 민족이나 국토 일부가 떨어져 딴 나라에 합쳐졌을 때, 그본디의 나라 :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에게 조국은 이런 의미였을 것이다. 신채호 선생은 광복 전까지 조국에 돌아가거나 책을 발간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에게 식민 치하 조선은 진정한 조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국이 어디인가?’라는 질문은 ‘진정한 조국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지금도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민족이나 국토 일부가 떨어져 있는 분단 상태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주인공은 분단 상태의 남과 북 어느 한쪽이 아닌, 제3의 중립국행을 선택한다. 그에게는 남과 북 어느쪽도 진정한 조국이 아니었다. 반대로 나는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가상의 나라를 조국이라고 상상해 본 적이 없다.

③ 자기의 국적이 속해 있는 나라 : 조국이 국적을 뜻하는 거라면 비교적 간단히 대답할 수 있다. 나는 대한민국 땅에서 나고 자란 대한민국 사람이다. 해외에 나갈 때도 대한민국 여권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 질문조차 간단치 않은 사람들이 있다. 재일교포 3세인 한 지인은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국적은 대한민국이다. 다른 지인은 한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미국에 이민 가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또 다른 지인은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라면서 복수 국적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에게 ‘조국이 어디인가?’라는 질문은 단순히 국적을 따지는 문제가 아닌 ‘어디를 조국이라고 생각 하는가?’라는 의미다.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판단에 대한 질문이 돼버리는 것이다. 주관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대답하기 어렵다. 월드컵에서 한국을 만나면 어느 쪽을 응원할 거냐는 질문조차 ‘엄마 아빠 중 누가 더 좋아?’ 수준의 난이도가 돼버린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고 있는 축구선수 아드낭 얀아지이(Adnan Januzaj)에게 국적을 묻는다면 뺨 한 대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아드낭은 벨기에서 태어났지만 조부모는 터키/세르비아 출신, 부모는 코소보/알바니아 출신이다.

정리하자면, 조국이 어디냐는 질문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나라’나 ‘국적’ 같은 사실 관계를 묻는 질문이라기보단 ‘진정한 조국이란 어때야 하는가?’라는 주관적 판단을 포괄하고 있다. “조국이 어디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한 정치인은 아마도 “당신은 조국이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묻고 싶었으리라.

사실 “조국이 어딘지 의심스럽다”는 말은 질문이 아니라 힐책이었다. 상대와 생각이 다르면 이런 점에서 잘못됐다고 말하면 될 텐데, 대뜸 “의심스럽다”고했으니 말이다. 사소한 언쟁 중에 “아니 그래도 그건 아니지”라고 말했더니 여자 친구가 대뜸 “네가 날 사랑하는지 의심스러워”라고 말한 격이랄까. 안타깝지만 이 상태의 여자 친구를 달랠 방법은 없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주장 앞에서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다시 처음의 “왜 눈곱은 꼬리가 아니라 머리에서 나오는 걸까?”라는 질문으로 돌아가자. 료마가 살았던 당시의 일본, 특히 료마의 ‘조국’ 토사국(土佐國)은 엄격한 위계질서가 지배하는 곳이었다. 하급 무사는 상급 무사가 지나가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상급 무사에게 무례를 범한 자는 칼로 베어 죽여도 죄가 되지 않았다. 불만이 없을 수 없었지만, 지배층은 힘과 논리로 피지배층을 억압했다. ‘상급 무사에게 대들면 일족이 죽임을 당한다.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이니 어쩔 수 없다’는 논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했다.

그렇다 한들, 차츰 불만이 쌓여가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료마가 장성했을 때는 불만이 임계점을 넘어 이미 사회에 표출되고 있었다. 하급 무사 출신인료마 역시 어려서부터 심한 꼴을 많이 겪었다. 희대의 검술 실력을 갖췄으면서도 상급 무사에게 저항하지 않는 료마를 동료들은 탓했다. 그때 료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한 것이다. “왜 눈곱은 꼬리가 아니라 머리에서 나오는 걸까?”

이 한마디는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한 모든 것에 의문을 던지는 씨앗이 됐다. 상급 무사가 하급 무사를 마음대로 죽이는 게 당연한 일인가? 왜 세상에는 신분이 존재하는 것일까? 내 조국, 토사국과 일본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의문이 꼬리를 물고 사람들 사이에 퍼져 나가면서 결국 일본의 봉건 사회는 막을 내렸다. 만인이 법적으로 평등한 새로운 세상이 등장했다.

우리 역사도 다르지 않다. ‘나의 조국은 어떤 모습 이어야 하는가?’ 끊임없이 되물었던 신채호 선생 같은 분들에 의해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신분제의 사슬이 끊어졌고 마침내 광복을 맞이했으며 눈부신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큰 적은 조국에 대한 생각이 다른 누군가가아니었다. ‘원래 그런 거다. 생각할 필요 없다’고 말한자들, 주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매국노라 몰 아붙이는 이들이야말로 우리를 고통에 붙잡아 놓은 적들이었다. “조국이 의심스럽다”고 말하는 진짜 의심스러운 그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