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완전한 평범을 추구해야 한다면?

그 어느 구석에서도 비범하면 안 된다면?

그렇다! 평범함은 사실 어려운 경지다.

평범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평범함은 비범하다.

“평범함은 죄악이다”는 내20대의 좌우명이었다. 원전은 아마 미국의 현대무용가 마사 그레이엄인듯 싶다.

1894년에 태어나 1991년에죽을 때까지 70여 년을 춤에 바친 그레이엄은 이런 말을 남겼다. “젊은이가 범할수 있는 가장 큰 죄악은 평범해지는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여기에 스티브 잡스의 유명한 말 “항상 갈구하라, 바보짓을 두려워 마라(Stay Hungry, Stay Foolish)”를 곁들이면젊은이를 위한 최고의 좌우명이 되지 않을까?

사실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마지막으로 던진 이 격언의 원조는 따로 있다. ‘대항문화와 사이버네틱스를 연결시킨 사나이’로 알려진 스튜어트 브랜드다. 정확히 말하면, 브랜드가 자신이 만든 잡지 <홀 어스 카탈로그(Whole Earth Catalog)>의 폐간호에 남긴메시지다. 브랜드와 <홀 어스 카탈로그>는 1960년대 말, 미국 실리콘밸리의 젊은 히피들에게 큰영향력을 미쳤다. 스티브 잡스가그 젊은 히피들 가운데 하나였음은 물론이다.

여기서 핵심은 스티브 잡스가 남의 말을 빌려 멋있는 척했다는게 아니다. 1960년대와 2010년대, 미국과 한국. 시공간을 넘어서 젊은이들에게 ‘평범함에 안주하지 말고 항상 비범함을 추구하라’고 말하는 게 멋있게 여겨지고 있다는데 주목해야 한다. 마사 그레이엄의 말이 돌고 돌아내 20대의 좌우명이 되었고, 스튜어트 브랜드의 말이 스티브 잡스를 거쳐 오늘날 한국의 젊은이들에게좌우명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젊은이들은 (아마도) 훗날 또다시 후대의 젊은이들을향해 ‘평범하게 살지 마!’라는 유언을 남길 것이다. 비록 그들의 삶이 지극히 평범했더라도 말이다.

그래, 평범함은 죄악이다. “그식당 괜찮아?” “평범해.” “그영화 재밌어?” “보통이야” “이번 학기 성적 어땠어?” “중간이야.” 이런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평범함, 보통, 중간 등은대체로 부정적인 느낌이다. 만약 물건이 아니라 사람에 대해 “성격 어때?” “평범해” “스타일은?” “보통이야.” “공부 잘해?” “그냥 그래.” 따위의 대화가 이루어진다면 왠지 더 부정적인느낌이 든다. 20대의 나는 도무지 그런 ‘평범함’을참을 수가 없었다.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성격, 평범한 취향, 평범한 능력까지, 모든 평범한 것들을 혐오했다. 길에서 나랑 같은 티셔츠를 입은 사람과 마주쳐도 기분이 나빴다. 평범할수록 내 존재가 참을 수없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아무튼 나는 평범한저들과는 다른 비범한 존재이기를 바랐다. 『삼국지』로 치면 유비, 조조, 손권 같은 존재 말이다. 거기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해도 솔직히 어떤 청춘이 엄백호의 동생 엄여라든가 한수의 수하팔부(手下八部)를바라겠는가?

그런 내게 큰 충격을 안긴 영화가 있었으니, 바로 미키 사토시 감독의 2005년 작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였다. 제목만 보고는 대강 이런 이야기 일 거로 생각했다. 거북이는 지상에서는 엄청 느리다. 하지만 물 만난 물고기, 아니 물 만난 거북이는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비범함을 보여준다. 사람도마찬가지여서, 비록 평소에는 평범하더라도 자기가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으면 얼마든지 비범해질 수있다. 그러니 너도 언젠가 재능을 발휘할 수 있을 거야. 뭐 이런 식의 희망찬 이야기 말이다.

영화는 이런 예상을 보기 좋게 뒤집었다. 공작(쿠자쿠)과 참새(스즈메)라는 이름의 두 여자가 등장하는데, 공작은 이름처럼 화려하게 살아가는 반면, 참새는 이름만큼 어중간하게 살아간다. 서로 접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두 인생이 친구라는 이름으로 평행선을 그리며 진행되는 듯하다가, 갑자기 참새에게 큰일이 생긴다. 그렇다. 여느 영화처럼 공작이 주인공이 아닌 것이다! 참새는 어느 날 계단 난간에서 손톱보다 작은 스파이 광고를 발견한다. 전화를 걸어 만나봤더니 지극히 평범한 노부부였다. 그들이 설명하기를, 스파이는 눈에 띄면 안 되기 때문에 남들의 기억에 남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 해야한단다. 그럴싸하지 않은가? 그렇게 참새는 얼떨결에 스파이 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그것이 더 평범해지는 것을 목표로 하는 조금 이상한 교육이었다. 장을 볼 때도 평범하게, 밥을 먹을때도 평범하게, 길을 걸을 때도 평범하게 하는 것이곧 스파이 활동이었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삶을 살 것! 그 지령에 따라 참새는 처음으로 일상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다. 자신의 평범한 일상이비로소 의미 있게 다가왔다. 스파이 교육을 받으면서 주변에 숨어 있던 다른 스파이들과 접촉하기도했다. 예를 들어 동네 상가의 ‘그저 그런 맛’의 라멘집 주인도 알고 보니 스파이였다. 정말 맛있는 라멘을 만들 수 있지만 스파이기 때문에 맛있지도, 그렇다고 맛없지도 않은 라멘을 일부러 개발하고 있었다. 훈련을 거듭할수록, 참새는 지겹게만 느껴졌던그 평범함이라는 것이 일부러 그저 그런 맛의 라멘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다.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는 제목은 ‘평범함은 의외로 어렵다’는 의미였다. 평범함이란 여러 선택지 가운데 중간쯤에 있는 무언가를 선택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거기 서 조금만 벗어나도 평범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살아갈수록 느끼게 된다. 평범하게 대학 나와서 평범하게 직장에 취직하고 평범하게 결혼하고 아기를 낳아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평범하고 지루한 인생이라도마음먹기에 따라 즐거울 수 있다는 식의 고리타분한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평범함’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고 되묻고 있다. 잠깐만. 평범해지는 게 의외로 어렵고 또 대단한 일이라고? 결국 평범하다는 건 비범하다는 말인가?

비범한 일이다. 참새의 삶은 특히 공작에게 비범한것이다. 거북이는 물속에서 빠르게 헤엄칠 수 있으면서도, 지상에서 갑갑할 정도로 느릿느릿 움직인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거북이의 움직임이 누구에게 갑갑하다는 것일까? 거북이가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북이가 아니라 거북이를 밖에서 관찰하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간단히말해, 평범하지 않은 쪽이야말로 평범한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잘 알수 있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참새는 속으로 공작의삶을 부러워하지만, 정작 위태롭게 모험에 가까운인생을 사는 공작은 참새를 진심으로 부러워했다.

다시 처음의 마사 그레이엄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평범함은 죄악”이라고 말했던 그녀 말이다. 사후에발표된 다큐멘터리에서 그녀는 자신의 삶에 대해이런 소회를 남겼다. “저는 제 삶의 전부를 춤과 무용가가 되는 일에 바쳤어요. 그건 인생으로 하여금대단히 강도 높은 방식으로 스스로를 활용케 하는것이죠. 때로는 즐겁지 않았어요.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했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었어요.” 참새의 삶이란, 공작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또 어려운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