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도 너무 덥다. 여름이면 항상 하는 말이지만, 올여름은 유난히 더운 것 같다.
휴가와 방학을 맞아 다들 조금이라도 시원한 곳을 찾아 떠난다.
하지만 이열치열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체감온도 40도에 육박하는 열탕 지옥 오사카에 다녀왔다.
‘서머소닉 록 페스티벌’을 보기 위해서다.
이열치열이 좀 과하기는 했지만, 까맣게 탄 얼굴만큼이나 짙은 추억이 남았다.
2000년 첫선을 보인 서머소닉은 매년 도쿄와 오사카 양쪽에서 이틀간 동시 개최돼왔다. 이번 오사카 공연의 경우 4개의 스테이지에 도합 80여 뮤지션이 출연했다. 도쿄와 오사카 티켓이 매진됐고, 헤드라이너의 경우 각 스테이지 별로 수만 명의 인파가 몰릴 정도로 그 규모가 엄청났다. 1997년에 한발 먼저 시작했던 후지록페스티벌(Fuji Rock Festival)의 아성을 넘은 지는 오래고, 최근에는 영국의 글래스톤베리(Glastonbury), 독일의 락앰링(Rock am Ring)과 함께세계 3대 록페스티벌로 손꼽힌다더니, 정말 여러모로 대단했다. 그래서일까? 그간 수많은 공연과 록페스티벌(이하 ‘록페’)을 경험했고, 얼마 전 라디오헤드를 본이후로는 ‘이제 뭘 봐도 두근거리지 않을 거 같다’고생각했는데, 오사카 행 비행기 안에서 나도 모르게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나만 그랬던 게 아니었다. “같이 가자!”며 무작정 휴가를 내고 서울에서 날아온 네 명의 친구들 역시 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서머소닉 당일, 설레는 마음에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부랴부랴 9시 반쯤 숙소를 나섰다. 문을 열자마자 섭씨36~7도, 체감온도 40도에 육박하는 열기가 우리를반겼다. 록페라면 관록이 쌓인 우리들, 모자에 선글라스에 선크림까지 몽땅 준비했고, 스키야에서 규동을먹었을 즈음만 해도 “서머소닉의 핵심은 소닉이 아니라 서머였어!”라며 깔깔댔는데… 사쿠라지마 역에 도착했을 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음이 느껴졌다.
서머소닉 공연장은 오사카 시내에서 지하철로 30분, 다시 버스로 10분 정도를 들어가야 하는 인공 섬에위치하고 있었다. 개인 차량이 출입할 수 없는 것이원칙이었기에 참가자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없었고, 말도 안 되게 혼잡할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 10시 전후로 시작되는 첫 공연을 포기하고 조금 여유있게 출발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쿠라지마 역 앞에펼쳐진 엄청나게 긴 줄에 조금 위축되긴 했지만, 이미수십 대의 버스가 바삐 줄지어 사람들을 태워 나르고있기에 조금 안심했다. 뙤약볕에서 두 시간이나 버스를 기다려야 할 줄 몰랐던 것이다.
두 시간의 열탕 지옥이었다. “록페는 내 돈 주고 사서고생하는 신개념 지옥.(더 기분 나쁘지)” “해병대 캠프를 보낼 게 아니라 록페를 보내야 해.” 농담 아닌 농담이 이어졌다. 두 시간 동안 따끈따끈 구워진 우리는 1시쯤 공연장에 도착했고, 그 이후 뜨거운 태양 아래서여덟 시간 동안 완전히 바싹 구워졌다.
하지만 응당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이, 잘나가는 존 레전드와 칼리 래 젭슨이 한낮에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노래하고, 린킨 파크와 스매싱 펌킨스 역시 조명도 못켤 정도의 땡볕에서 공연하는데 우리 따위가 덥다고불평할쏘냐. 그 와중에도 틈만 나면 쭈그려 앉아 쉬었는데 뮤즈와 메탈리카의 공연을 즐기기 위한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다. 록페는 일종의 장기전이라 체력 안배가 중요한 법이다. 뮤지션들에게선 ‘보여줄 수 있는건 다 보여주겠다’는 결의가 팍팍 느껴졌다. 뮤즈의경우, 무대 위 화려한 영상은 기본이고, 수 미터짜리실물 로봇을 만들어 출연시키더니, 마지막에는 폭죽을 엄청 쏘아 올렸다. 메탈리카는 2층짜리 무대를 설치해서 그 위를 뛰어다니며 최고의 사운드와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무엇보다 헤드라이너들이 거의 곡마다 악기를 바꾸어가며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한 번 서머소닉이 대단하긴 하구나 실감했다.
둘째 날, 첫날 뒤늦게 에어컨이 나오는 실내 공연장을발견했었기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열기를 피해 그곳으로 뛰어갔다. 한낮, 그것도 서드 스테이지였음에도조니 마나 뮤처럼 쟁쟁한 밴드들과 바스틸이나 코다라인처럼 소위 ‘요즘 뜨는 밴드’들의 공연이 이어졌다. 중간중간 맥주를 사기 위해 잠깐 나왔을 때, 실내 공연장 복도 창밖에 비친 메인 스테이지에는 시뻘겋게익은 수만 명의 사람들이 괴성을 지르며 예의 그 열탕 지옥을 연출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열리는 록페스티벌에 참여한 외국인의 입장에서 한 가지 신기했던 것이 자국 밴드가 헤드라이너못지않게 인기가 있었다는 점. 첫째 날의 미스터 칠드런이나 둘째 날의 맥시멈 더 호르몬은 인파가 실로 어마어마했다. 뮤즈나 메탈리카보다 더하면 더했지덜하지는 않았다. 미스터 칠드런이야 일본 내에서 유명한 모던록 밴드라고 치지만, 맥시멈 더 호르몬은 특이하고 하드한 음악을 하는 밴드가 아닌가. 어찌 저리좋아들 하는지.
아쉬운 점이 없었던 건 아니다. 무엇보다 너무 더웠고, 여러모로 시간이 겹쳐서 놓친 뮤지션이 많았다. 관객도 한국만큼 미친 듯이 놀지는 않았다. 좀 미쳐줘야 함께 미치는데. 그래도 관객들의 공연 관람 매너는 확실히 수준 높았다. 게다가 똑똑한 공연장 배치, 수준 높은 무대장치, 편리한 부대시설, 그리고 운영요원의 능숙함까지 더해져 행사 자체는 거의 만점에가까운 점수를 줄 만했다. 덕분에 개인적으로는 평생기억에 남을 추억을 얻었다.
돌아가는 버스를 향해 검게 그을린 얼굴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를 외치며 손 흔드는 운영 요원을보면서 왠지 울컥했다. “이쪽이야말로, 덕분에 즐거웠어요. 수고하셨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