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거인』의 인기가 대단하다. 일본에서 2013년 4월에 발매된10권의경우, 한주만에 40만 권이 넘게 팔려 역대 기록을 경신한데다, 총 누계 판매량은 1200만 권에 달한다고 한다. 한편, 일본 총리 아베 신조의 악명도 대단하다.『일본국헌법』 제9조 개정을 위해 제96조 마저 바꾸려 한다. 그가 ‘대일본제국’을 그리워하는 건 아닌지 전 세계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뉴스를 보면서『진격의 거인』을 읽고 있었기 때문일까,“그 만화에 일본 우경화의 논리가 담겨 있다”는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진격의 거인』의 스토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전방에 스포일러 주의!) 어느 날 인간을 잡아먹는 것에만 관심을 보이는 거대생물 ‘거인’이 등장한다. 그 압도적인 힘 앞에 인류는 존망의 위기에 처한다. 만화에서는 이 상황을 줄곧 ‘약육강식’으로 표현한다.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었던 인간 위에 그들을 먹이로 삼는 존재가 나타났다는 말이다. 어찌저찌 살아남은 인간들은거대한 삼중 벽을 원심형으로 쌓는다. 가장 바깥 성벽에 사는 사람들이 제일 위험하고, 가장 안쪽에 있는 성벽 안에 사는사람들이 제일 안전하다 . 그래서 자신이 어디에 살 수 있는가는 일종의 계급에 따라 결정된다.

다행히도 성벽은 100여년 가까이 거인들을 완벽히 막아낸다. 그리고 인류는 거인들의 존재를 거의 잊은 채 살아가고 있다. 평화의 타성에 젖은 것이다. 부모님과 소꿉친구 미카사와 함께 살던 소년 엘런(주인공)은 그 상황은 거인에게 ‘사육당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분개한다. 그는 언젠가 조사병단에 들어가서 성벽 밖을 탐험하고 거인을 죽이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러던 어느 날, 돌연 나타 난 초대형 거인에 의해 제일 바깥 쪽 성벽이 무너지고 그 구멍을 통해 다수의 거인이 침입하여 사람들을 잡아먹는다. 희생자 속에는 엘런의 어머니도 포함돼 있었고, 아버지는 어디론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어머니의 복수를 꿈꾸며 훈련병으로 살아가던 엘런은 거인과의 전투 중에 의도치 않게 거인화하게 된다. 비록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거나 거인화를 통해 거인에게 역습을 가할 수 있다고 판단한 군부는 엘런을 조사병단에 포함시킨다. 비로소 ‘인간의 진격’이 시작된 것이다. 자신이 거인화 된 것이 아버지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 엘런은 조사병단과 함께아버지의 흔적을 쫓아 성벽 밖으로 나간다.

만화의 설정을 일본에 대입하면 이런 식의 이야기가 가능하다. 거인의 침공은 19세기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이라고볼 수도 있다. 17~18세기를 거치면서 급격하게 성장한 서구 산업자본주의는 19세기 초 새로운 시장으로서 아시아를 발견하게 되고, 말 그대로 아시아를 잡아먹으려고 달려든다. 아편전쟁을 전후로 한 서구 제국주의의 중국 분할 정책을 ‘중국멜론 잘라 먹기(Cutting of Chinese Melon)’이라고 표현한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일본 역시 미국 페리 제독의 ‘쿠로후네(흑선)’ 앞에 백기를 들고 문호를 개방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갈등이 있었음은 우리 역사만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기득권층은 높게 쌓은 성벽 뒤에 숨기 바빴고, 쿠로후네의 포탄은 고스란히 백성들의 삶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물론, 그렇지 않은 기득권층도 있었다. 정확히는 기득권의 주변에 머물던 사람들이었다. 어렵게 뜻을 모은 유신 지사들이기존 체제를 거부하며 거사를 벌였다. 그들은 만화 속 주인공 엘런처럼 ‘이대로라면 언젠가 잡아먹히기 위해 사육당하는것에 불과하지 않은가?’라고 생각했으리라. 어쨌거나 비교적 외압의 정도가 약했던 일본은 성공적으로 개혁개방 정책을단행했고, 이후 거의 10년 간격으로 한 걸음씩 세계를 향해 진격을 개시한다.

중국처럼 ‘잘라 먹힐’날만 기다리던 일본이 그 운명을 거부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침탈자들을 모방하는 것이었다. 만화속 표현을 빌리면, ‘거인화’였던 셈이다. 거인을 이기려면 스스로 거인이 되어야 한다는 만화 속 논리와, 제국을 이기려면스스로 제국이 되어야 한다는 당시의 논리는 이처럼 닮아있다. 청일전쟁(1894~1895)으로 중국을 넘고 러일전쟁(1904~1905)으로 러시아를 넘어, 한반도와 만주를 점령하더니 중국 본토를 차지하겠다고 중일전쟁(1935~1945)을 일으켰고, 마침내 그토록 무서워했던 미국에 도전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일본의 군국주의와 초국가주의의 불행한 진격은 두발의 핵폭탄과 함께 막을 내린다.

전후 미군정에 의해 작성된 헌법에는 세계 헌정사에 유례없는 평화조항(제 9조)이 포함됐다. 조항에 따르면 일본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력에 의한 위협이나 무력 행사를 할 수도 없으며, 이를 위한 전력(戰力)이나 교전권도 갖지 않는다. 지금도 많은 일본인이 평화조항을 자랑스러워하고, 그들의 헌법을‘평화헌법’이라 부르며 지키려고 애쓰고 있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 제9조를 개정하자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들 모두가 과거의 일본 군국주의를 추억하는 사람들은아니다. 아베를 비롯한 우파들 역시 침탈을 목적으로‘보통 국가’를 주장하는 건 아니다. 이라크 전쟁 이후, 강대국으로서 일본이 국제 평화에 더욱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 나아가 제9조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평화를 위한 무력사용은 허용된다는 주장이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제기돼 왔던 참이다. 만화 속 엘런처럼, 일본 사회에 만연한 평화의 타성을 꾸짖는 목소리도 여기에 일조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에 따라 실제 일본은 별도의 법률을 마련하여 해외 파병을 보내기 도 했으며, 더욱 적극적인 형태의 법안도 준비하고 있다.

일본의 진격을 외치는 논리의 근저에는‘평화를 위한 무력의 사용은 긍정될 수 있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국제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는 거인들(예를 들어 중국)을 물리치기 위해 일본이 거인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00여 년 전의 주장과 어딘가닮아있지 않는가? 만화 속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아버지에 의해 거인화라는 힘을 갖게 된 엘런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일본은 언제든 거인이 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힘을 갖게 해준 일본의 아버지는 과거 제국주의 일본의 패망 가운데 살아남은 자민당 세력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힘을 가진 일본은 진격할 것인가? 『진격의 거인』속 이야기는 엘런에게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통제하기 어려운 그 힘의 본질적 의미는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되묻는다. 86년생인 작가 이사야마 하지메는 엘런을 통해 동년배 일본인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거인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거인이 되어도 좋은 것일까? 우리가 이것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일까?”

『진격의 거인』은 우경화에 의문을 던지는 우화로 이해될 수도 있다. 스토리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몰라도, 엘런이 잠자코 아버지의 숨겨진 목적을 따를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마찬가지로 일본 젊은이들이 아베와 똑같은 답변을 내놓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일본을 살아가는 엘런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그들의 잘못된 과거를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