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담당 기자와 미팅 겸 한가로운 오찬을 즐기고 있었다. 시커먼 사내 둘이서 다소곳하게 ‘빠네(pane)’따위를 먹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입가심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대뜸 이번에 편의점에 대한 특집을 준비하고 있는데, 야간 편의점에 대한 글을 한 꼭지 써보지 않겠냐고 물어오는 것이었다. 얼마 전, 정확하게는 <대학내일> 637호에 실린 에세이에서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 경험담을 언급했던 게 떠올랐기 때문이란다.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라니! 솔직히 말해, 별로 즐거운 경험은 아니었다. 낮 시간을 벌기위해 밤을 택한 것인데, 막상 해가 뜨면 머릿속이 멍해졌다. 낮잠은 밤잠에 비해 피로 회복률이 반 토막이라더니, 날이 갈수록 다크서클이 문신처럼 짙어졌다. 미국 영화에 나오는 편의점 강도처럼, 문을 부술 듯이 들이닥치더니 천 원짜리 몇 장을 내던지며 다짜고짜 “담배!”라든가 “술!”이라고 소리치는 진상이라도 만나면, “내가 겨우 이 돈 받고 이 무슨 고생인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전국의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중에 아무나 한 명을 골라 벽에 핀셋으로 고정시켜 놓고, ‘암울한 청년의 표본’이라는 제목을 달아놔도 아무도 토 달지 못하리라.

그러나 지나간 일은 다 추억이 되기 때문일까? 곰곰이, 그것도 아주 곰곰이 생각해보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육체노동(흔히 말하는 노가다)에 비해 노동의 강도는 낮았고, 요즘 말하는 감정노동에 비해 마음상할 일이 많지는 않았다. 낮 시간에 더 적은 시급을 받으면서 편의점 주인의 눈치를 살펴야했던걸 생각하면, 밤에 혼자서 자유롭게 일하는 편이나았다. 한밤중에 들어온 물건을 정리하고 나면, 가끔 오는 손님들을 감시하는 것 외에 특별히 할 일은 없었다. ‘싸우론의눈’같은 CCTV만 잘 피한다면, 유통기한이 조금 지났거나 잘못 들어온 것들을 몰래 먹어치우면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책을 읽을 수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야간 편의점은 가난한 대학생에겐 사색을 위한 최고의 장소였다. 밝고 쾌적한 환경과 풍부한 먹을거리가 제공되면서, 졸려도 잘 수 없었으니, 사색 외엔 달리 할 것도 없었다. 술 한모금 안마시고 한 밤중에 깨어있으면 ‘걔는 왜 나한테 그런 문자를 보냈을까?’에서 ‘인간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에 이르기까지 온갖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봉투에 넣어드릴까요?” “적립카드 있으세요?” 따위는 뇌를 거치지 않고도 말 할 수 있었기에, 일을 하면서도 사고의 흐름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벤트처럼 중간 중간 등장하는 진상 손님만 없었다면, 우주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칸트는 그의 고향 쾨니히스베르크를 산책하면서 <순수이성비판>을 썼고, 아인슈타인은 베른의 특허 사무소 심사관으로 일하면서 양자역학과 특수상대성이론에 관한 논문을 완성했다. 오늘밤, 전국의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중 누군가는 칸트와 아인슈타인의 뒤를 잇고 있을 수도 있다. “젠장, 그렇게 좋은 아르바이트가 있었다니! 나는 칸트나 아인슈타인이 될수 있는 기회를 빼앗겼어!”라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편의점은 아르바이트생의 편의를 위한 곳이 아니라, 우리의 편의를위해 그들에게 ‘불편’을 강요하는 곳이기에, 아마도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