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시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이다. 하지만 요즘 순수한 의미에서 자기만의 취향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가 취향을 습득하는 방법은 두 가지로 수렴한다.멜론 뮤직에서 음악을 듣고, 예능 프로에방영된 맛집을 찾는 대중적인 방법. 한 분야만 파는 취미인들의 식견을 따르는 마니아적인 방법. 말하자면 ‘취향의 양극화’ 상태다.사람들은 이제 양극단의 취향을 선택해 편히 받아들일 수 있지만 결국 그것은 남이 짜놓은 ‘코스 요리’에 불과하다. “코스요리가 어때서!”라고 말할 사람은 그냥 페이지를 넘기시라. ‘코스 외 요리’를 찾겠다는 독자라면 다음 줄로 눈길을 옮기시고.
TV나 인터넷 블로그, 심지어 ‘핫’하다는 잡지를 봐도 ‘다 거기서 거기’라는 인상을 받기 일쑤다. 책이나 CD는 이미 베스트셀러고, 맛집도 입소문이 날 만큼 난 곳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의 소설 『개미』에서 이런상황을 아프게 꼬집는다. “결국 이 거대한 진창 속에서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상품들만이 살아남는것이다. 사람들은 그 상품들이 가장인기가 있다는점 때문에 마음놓고 소비한다.” 소설 『개미』 역시대중매체가 만들어내어 살아남은 상품이라는 점이아이러니지만.
마니아의 경우는 정반대다. 대중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독특한 것들이 많다. 어쩌면 대중이 좋아하지 않을 만한 것을 좋아해야 마니아가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될정도다. ‘나는 나만의 취향이 있지’라고 주장하는 마니아들이지만, 적극적으로 취향을 공유하고자 하는 경향 때문인지, 항상 일정규모를 이루고 있다. 마니아들은 그들만의 세계에서 다수이며, 사회 전체의 취향 스펙트럼 상에서도 눈에 띄는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요즘엔 마니아 집단이 특정 취향을강요하는 권력을 발휘하는 상황이다 보니, 더 이상 그들을‘소수’라고 부를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대중과 마니아,취향의 양극화
서두에 언급했듯이, 지금 우리가 선택할 수있는 취향은 대중적인 것과 마니아적인 것두 가지로 압축되어 있다. 뮤직뱅크냐 인디클럽이냐, 멀티플렉스 극장이냐 독립영화관이냐, 프랜차이즈 베이커리냐 고급 블랑제리(boulangerie)냐, SPA냐 유명 디자이너냐 중에 선택해야 한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더 찾을 수 있다. 더 우울한 것은, 매체들이 양극화를 다양화인 척 눈속임하고 있다는점이다.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것 세 가지와 전문가의 추천 두 가지를 나열해놓고 ‘다양하다’고 말한다. 인터넷에 ‘맛집’을 검색해보면 엄청나게 많은 자료가 나오니 그렇게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베르베르의 말처럼, “(정보의) 과잉은창조를 익사시키고 비평은 마땅히 이 예술적 범람을 걸러 낼 책임을 져야함에도 불구하고 정보의 홍수 앞에 주눅이 들어 버린” 상황에 불과하다. 취향에 따라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하는 척하지만, 실상은 취향 자체가 한정돼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취향이 양극화된 상황에서, 대중문화는 싫지만 그렇다고 마니아도 아닌 사람들은 말 그대로 문화적 소수자가 됐다. 대중이나 마니아의 평판에 의존하지 않는 자신의 취향을 따라가는 것이 점점 낯설고 어려워졌다. ‘맛 없는 영국요리에는 짠맛과 단맛만 있어 미맹이 많아졌고, 그래서 아주 짜거나 아주 단 음식을 만들어 파는 가게가 많아졌다’는 농담 같은 악순환을 마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영화 음악 맛집 패션
이제 취향은 대중매체와 마니아로 양분됐다
양쪽 모두 일종의 코스 요리를 제공한다
코스 외 메뉴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자기만의 취향은 대체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고메가 아닌 구루메
영국요리 이야기를 하니,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가 떠오른다. 이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험상궂은 인상에 키만 멀대같이 큰 독신남이 맛집을 찾아다니는 이야기다. 특별할 것 없는 스토리에, 미식가 혹은 식도락가를 뜻하는 프랑스어 ‘고메(Gourmet)’를 ‘구루메(グルメ)’로 표기할 수밖에 없는 엉성한 일본어 발음과는 달리,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의 ‘조금은 독특한 취향’은 정말 매력적이다. 고로는 언제나 ‘제멋대로’ 식당을 선택한다.
우리 같으면 주변 사람으로부터 추천을 받거나, 그것도 아니면 인터넷 검색이라도해 볼 텐데, 그는 배가 고프면 무작정 주변 상가를 빠른 걸음으로 돌아다닌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진 않는다. 주변 가게의 외관이며 메뉴를 스캔할 때면언제나 “서두르지 마! 너는 배가 고픈 것뿐이다”라며 스스로를 진정시킨다. 자기 배의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고민 고민 끝에 고른 식당이니 얼마나 대단한 맛집일까 싶지만, 그렇지도 않다. 고로가 우연히 발견해 찾아간 소소한 가게들은 소문난 대박집도 아니고, 음식 칼럼니스트니어쩌니 하는 전문가들이 높게 평가한 집도 아니고, 요즘 유행하는 ‘착한 맛집’도 아니다. 그는 식당을 선택할 때 묵묵히 자신의 취향만 따라간다. 동네 밥집이나 선술집에서 선택할 수 있는 메뉴라고 해봐야 특별한 게 없다. 문어 모양을 낸 비엔나소시지나 으깬 감자 샐러드, 일본식 스파게티(나폴리탄)따위다. 그런데 그걸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먹는 모습만 봐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별것 아닌 걸 대단한 것으로 포장하는 일본인의 특징’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 이런 식으로 자신의 취향(taste)을 따라가는 사람이흔치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대단한 주방장이 엄선한 재료로 정성껏 만들어낸 음식을 평가하는 고메(Gourmet)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동네 식당에서 소소하게 만들어낸 음식에 감탄하는 구루메(グルメ)인 셈이다.
별점 따윈 상관없어
취향(趣向)이란 본래 ‘여럿 가운데 특별히가려서 좋아하는 경향’을 말한다. 그러니 취향을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여럿’, 즉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해야 한다. 취향의 양극화를 강요하는 사회라면 선택지를 다양하게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려면 오히려 대중적 인기와 전문가의 평가 따위로부터 스스로를 어느 정도 격리시킬 필요가 있다. 방송 채널 달랑 3개에 인터넷도 없던 80~90년대엔 어두운 미로를 손으로더듬어가는 것처럼 취향을 발전시켜나갔다. 자기 귀에 좋은 노래, 우연히 알게 된 좋은 장소. 결국 누구나 조금은 남다른 취향을 갖게 됐다.
이 방법을 현대에 차용한다면? 책도 자기가 직접 서점을 들쑤시며 찾고, 음악도 자기 귀로만 판단해보고. 그렇게 하나하나 쌓아나가면 자신만의 색깔을 갖게 되지 않을까? 존중해줄 만한 당신 취향은 그렇게 만들어질 게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