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녀석들>에서 신보라가 말했다. “위대한 탄생, K팝스타, 슈퍼스타K, 보이스코리아, 지겨워!”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TV만 틀면 나오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서, 대체 왜 이따위(당시에는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프로그램에 열광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스토리, 연출, 출연자 어느 하나라도 볼 만한 부분이 있어야 볼 텐데, 오디션 프로그램은 모두 수준 미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어느 순간 바뀌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은 다양한 측면에서 제기돼 왔다. 제일 먼저 연출 방식(악마의 편집)이 사실을 과장, 왜곡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또 오디션 프로그램이 거짓 환상을 불러일으킨다는 비판도 있었는데, 실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는 공정한 경쟁인 척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였다. 한편, 많은 음악인들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똑같이 랩하고 똑같은 창법에 비스름한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양산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작곡가 돈스파이크는 “우리나라의 음악계는 썩은 불량식품처럼 변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근본적인 비판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산울림의 김창완 아저씨가 한 말이었다. “그냥 매일매일 만들어지는 졸작들, 만들고 좌절하는 음악, 실망스러운 문학 작품, 그림들… 그게 다 그 자체로 예쁜 거거든요. 그걸 되지도 않는 잣대로, 박수소리 하나만 갖고 잣대를 매겨서 누굴 상주고 떨어뜨리고. 그런 걸 즐기는 사람들의 잔인한 속성을 부추겨서 장사를 해먹는 건 나는 반대입니다.” 이런 비판들은 모두 한 번쯤 곱씹어 볼 만한 것들이다. 이 비판들이 다 옳다면, 오디션 프로그램은 막장 중의 막장인 셈이다. 대체 이런 막장 프로그램이 왜 그리 인기 있는 것일까? 한편으로는 타인의 경쟁 과정에서 쾌감을 느끼는 대중의 심리에 영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른들의 잣대로 ‘상품성’을 가진 청년들만 골라낸 뒤 나머지는 ‘탈락자’로 만들어버리는 잔인한 배틀로얄에 불과한데 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아니, 그게 다일까?

내가 만든 연예인 오디션 프로그램을 위한 변명, 그 첫 번째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가 자신들을 위한 연예인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당연한 말 같지만, 그 의미가 다소 가볍게 취급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과거의 연예이은 어느 날 갑자기 TV 속에 나타나, 당연하다는 듯 그곳에서 살아가는 존재였다. 어떤 과정을 통해 그가 연예인이 되었는지 대부분의 경우에는 알 수 없었다. 시청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채널을 돌려서 호불호를 나타내는 것뿐이었다. 그에 반해 오디션 프로그램은 시청자의 의견이 상당한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갖는다. 한정적이긴 하지만, TV에 누가 나와야 하는지 시청자가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소 과장하자면, 시청자가 연예인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디션의 핵심이 여러 대안 가운데 시청자들이 ‘인기투표’를 통해 연예인을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듬어지지 않은 재능을 발견해내고 다듬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사실 역시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들 간에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전문가와 시청자의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이러한 불일치가 오디션의 결과에 반영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은 더 이상 참가자들의 재능을 줄 지우는 것이 아니게 된다. 서로 다른 다양한 기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만족하는 이상적인 연예인을 만들어 내는 기획사의 과정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각각의 시청자가 자신이 응원하는 참가자를 연예인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이해돼야 한다. 그렇기에 전문가 평가와 시청자 투표를 통해 단 한 명의 우승자가 가려지게 되지만, 한 시즌의 오디션이 끝나면 시청자의 마음속에는 각자 응원했던 참가자, 즉 그들이 만든 연예인이 한 명쯤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오디션 프로그램을 위한 변명, 두 번째는 ‘우리가 만든 연예인’이 또 다른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연예인은 완벽한 우상(idol)으로 ‘만들어져’ 왔다. 노래도 잘하고 예쁘고 게다가 성격도 좋아야 했고, 적어도 그래야 성공할 수 있었다. 어떻게 정의하든지 간에 연예인은 ‘일반인’의 대칭점에 있는 뭔가 특별한 존재였고, 그래서 연예인에 대한 평가 기준 역시 매우 엄격했다. 그들은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비판 혹은 비난을 당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한 연예인들에게는 조금 다른 잣대가 적용되고 있다. 조금은 어설프고 어딘가 부족해도 그런 모습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심지어 그런 어설픔과 부족함을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 적용되는 기준을 보면, 오디션 출신들은 특별한 재주를 가진 일반인 정도로 간주되는 것 같다. 만약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지 않았다면, 우리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갔을 일반인이라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들이 연예인으로서 부족한 모습을 보여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들의 특별한 재능을 크게 칭찬할 수 있게 된다. 최근 싱글 앨범 <1,2,3,4>를 발표한 신인 가수 ‘이하이’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처음 든 생각은 “이래도 괜찮은 걸까?”였다. 보컬로서의 재능은 분명했지만, 굳이 말하자면 또래 아이돌들에 비해 몸짓 같은 것이 어딘가 부족해 보였다. 그러나 대중은 그녀에게 열광했다. 그녀가 K팝스타의 우승자가 아니라는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버스커버스커를, 허각을, 이하이를 사랑하는 대중은 이제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삼단 고음을 못해도, 예쁘지 않아도, 춤을 잘 추지 못해도, 그러니까 ‘우상(idol)’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서 그들의 지금은 조금 부족하더라도 이만큼 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변화인지를 알기 때문일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잔인한 배틀로얄로 바라보기보다 참가자와 시청자 모두를 성장시키는 힐링캠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배틀로얄이라면, 오디션에서 탈락한 참가자들 대부분은 왜 좌절하기보다 다시 도전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일까? 하나의 잣대로 모두를 줄 세우려 하고, 무한 경쟁을 이야기하면서 1등만 기억하는 것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라 세상이다. 고상한 척 비판하기보다 오히려 사람들이 왜 그것에 열광하는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오디션 프로그램은 단순한 쇼가 아니다 삭막한 생존경쟁도 아니다 대중이 한 연예인의 탄생을 함께 하는 무대다 1등이 아니어도 완벽하지 않더라도 관객은 자신만의 연예인을 따뜻하게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