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2011-12 시즌 유럽 축구 리그가 차례로 막을 내렸다. 지난 시즌의 화두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돈으로 우승을살 수 있는가?”쯤이 될 것이다. 승리의 여신은 이 질문에 적어도 두 팀에게는 미소를 보였다. 바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두 팀, 첼시와 맨시티다. 두 팀은 이번 시즌 각각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리그 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뒀는데, 여기에 만족하기는커녕 선수 영입 경쟁에 더 열을 올리고 있다. 수년 전부터 클럽들의 이러한 행태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어 왔지만, ‘머니 풋볼(Money Football)’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끝없는 지출 경쟁은 마치 국제정치의 군비경쟁과 흡사하다.그렇다면 군비경쟁 이론에서 축구 정책의 앞길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최근 연구 범위와 깊이가 확장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국제정치학은 국가 간의 역학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국제 체제가 무정부적이기 때문에 각국은 스스로 생존을 위해 노력(Self-help)해야 한다든가, 자국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합리적 판단을 해야 한다는 식의 통념 역시 국제정치학, 그중에서도 ‘현실주의’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주의 이론가들은 무정부 상태에서 경쟁적으로 이익 혹은 힘을 추구하는 국가 간의 갈등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갈등이 무조건 전쟁으로 비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갈등의 가능성’ 때문에 각국이 끝없는 군비 경쟁(Arms Race)에 빠지게 된다는 점이다.
바르셀로나와 레알마드리드의 세력균형 기본적으로 군비경쟁의 이면에는 ‘상대의 힘에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세력균형론(Balance of Power)의 관념이 깔려있다. 상대방의 힘이 자신보다 강해지지 않도록 견제하기 위해 끊임없이 군비를 지출하는 것이다. 프리메라리가의 바르셀로나와 레알마드리드와 같이 전통적 라이벌 관계에 있는 클럽 간의 경쟁은 대개 이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이번 시즌 레알마드리드에 밀려 리그 우승을 빼앗긴 바르셀로나가 전력 상승을 위해 어떠한 식으로든 지출을 확대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반대로 레알마드리드 역시 그 상황을 좌시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양 클럽 간의 라이벌 관계가 계속되는 한 출혈경쟁도 가속화될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경쟁구도 속에서 한쪽이 파산하게 되면 군비경쟁이 일단락된다. 미국과 소련 사이에 있었던 지난한 ‘냉전(Cold War)’이 끝나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소련이 과도한 군비경쟁에 의해 파산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시즌, 오래도록 이어진 스코틀랜드 리그 셀틱과 레인저스의 라이벌 관계가 레인저스의 ‘법정관리’로 막을 내리게 된 것도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과도한 출혈경쟁은 한쪽이 균형을 포기하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끝나게 된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에서의 세력전이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서 한쪽이 압도적인 힘을 가진 상황이 되면 군비경쟁이 줄어들까? 그럴 수 있다. ‘패권안정론(Hegemonic Stability)’은 세력 균형 상황보다 압도적인 패권국이 존재하는 상황이 더 안정적이라고 주장한다. 이 이론에 바탕해 냉전 이후 미국이 패권국의 지위를 차지하면서 오히려 전쟁의 가능성이 줄어들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하나의 패권국은 오래 유지되지 못 했다. 도전국이 힘을 키워 패권국을 위협할 수 있고, 실제 도전국이 없더라도 그 두려움 때문에 패권국은 군비 지출을 멈출 수 없다. 패권국이 아닌 여타 국가들 역시 같은 이유로 마냥 군비지출을 축소할 수는 없다. 군비경쟁의 딜레마가 계속되는 것이다. 우승 횟수만 놓고 보면, 프리미어리그는 오랫동안 안정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1991년 1부 리그 20개 클럽의 동의하에 출범한 프리미어리그는 지금까지 오직 5개의 클럽만이 우승 경험이 있었는데, 그나마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12회로 압도적이기 때문이다(아스널과 첼시가 각각 3회, 블랙번 로버스, 그리고 이번 시즌에 우승한 맨체스터 시티가 각각 1회). 하나의 클럽이 압도적인 전력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그리고 나머지 클럽들이 전세를 뒤집을 수 있을 정도의 지출을 감당할 수 없을 때는 지출경쟁이 다소 약화될 수 있다. 그러나 스포츠에서 이런 상황은 자주 발생하지 않고 또 오래 유지되지도 않는다. 때문에 누구도 지출 경쟁을 멈출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사실상 지금까지의 프리미어리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불안한 패권과 이에 도전하는 클럽들(아스널, 첼시, 리버풀) 간의 끊임없는 경쟁 구도 속에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첼시의 구단주 로반 아브라모비치는 클럽 인수 후 9년간 선수영입을 위해 약 7억 6300만 파운드(한화 약 1조 4천억)를 썼고, 맨체스터 시티의 구단주 만수르 빈 자예드 빈 술탄 알 나흐얀은 클럽 인수 후 4년간 5억 1000만 파운드(한화 약 9,399억원)를 썼다. K-리그 전체 예산이 200억원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실로 엄청난 금액이다. 반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패권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지출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고, 이번 시즌 맨체스터 시티의 리그 우승은 기존의 패권 구도가 본격적으로 와해되기 시작했다는 증거로 보아야 한다. 또 다른 패권이 등장하기 전까지, 프리미어리그에서 세력전이를 향한 출혈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군비 경쟁과 영입 경쟁의 비극 당연한 이야기지만, 과도한 군비경쟁의 앞에는 비극적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군비경쟁은 단기적으로는 합리적 선택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보면 패권국과 도전국, 그리고 그와 관계된 모두를 힘들게 하는 불합리한 행위다. 무엇보다 군비경쟁 그 자체가 전쟁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군축(Reduction of Armaments)’은 언제나 국제정치의 핵심 과제로 거론되어 왔다. 축구계의 과도한 영입 경쟁이 불러온 비극도 마찬가지다. 영국만 해도 리즈 유나이티드, 포츠머스 등 파산 이후 끝 모를 추락을 거듭하는 팀들이 많다. 축구계 역시 과도한 지출 경쟁에 우려를 표명하며 축구판 군축을 시도하고 있다. 프리미어리그 등에서는 2013년도부터 직접적으로 클럽의 재정적자 규모를 제한하는 ‘파이낸셜 페어플레이(Financial Fairplay)’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더욱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6+5 룰’(FIFA)이나 ‘홈-그로운 쿼터(Home-grown Quarter)’(UEFA) 같은 제도 역시 마련되고 있다. 이러한 조치는 직접적으로 재정 지출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지만, 클럽 선수 가운데 자국 국적 선수의 비율을 높이도록 강제함으로써 외국인 선수에 대한 과도한 영입경쟁을 간접적으로 제한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실효성을 가질지 아직 확실치 않고, 벌써부터 일부 클럽들은 이러한 규제를 우회하는 방법을 시도하고 있는 듯하다. 축구계가 국제정치의 비극을 답습하지 않을지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선수 영입 경쟁에 수십 억원 씩 쏟아붓는 유럽 축구 클럽들 전세계 군비 경쟁을 통해 보는 축구 클럽들의 머니 게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