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세계박람회(엑스포)의 관람객 수가 적다고 난리다. 미디어와 정부의 엄청난 지원 속에도 하루 2~3만 명 수준에서 머무르고 있다. 여수세계박람회 조직위원회는 하루 10만 명이 관람할 거라 전망했지만 가망성이 없다. 하루 평균 15만 명이 방문했던 대전엑스포의 명성은 따라갈 수 없을 듯하다. “안 돼! 여수박람회는 성공해야 해. 우리나라도 할 수 있어!”라며 발을 구르는 사람도 있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오히려 관람객이 적은 게 진짜 성공이다. 우리를 휘감고 있던 ‘문명개화론’을 벗어나고 있다는 징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계박람회는 누가 더 발전했는지를 뽐내는 문명화의 경연장 서구에선 시들해진 박람회가 동아시아에선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세계박람회는 “인류 상호 간의 이해와 복지향상, 인류의 비전 제시”를 표방하지만 사실상 참가국들이 자국의 산업발전 정도를 선전하는 홍보 마당이다. 자기네 물건과 기술력을 온갖 방법을 동원해 뽐낸다. 이번 여수세계박람회에선 끊임없이 바다 보호의 메시지를 던지지만 바다 보호를 위해 참가한 국가는 대체 몇 나라나 될지 의문이다. 관람객 쪽도 그건은 마찬가지이고. 세계박람회의 각 국가관을 보고 있으면 게임 ‘시드마이어의 문명’이 떠오른다. 한때 3대 악마 게임으로 불리며 “문명하셨습니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던 이 게임의 기본 개념은 무척 단순하다. 유저는 그리스, 독일, 러시아, 로마, 미국, 송하이, 시암, 아라비아, 아스텍, 영국, 오토만, 이로쿼이, 이집트, 인도, 일본, 중국, 페르시아, 프랑스, 한국 중 하나를 선택하고, 말 그대로 문명을 ‘발전’시키기만 하면 된다. 발전의 목표는 적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며, 승리하기 위해서는 적국의 모든 수도를 점령하거나(Domination Victory) UN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거나(Diplomatic Victory) ‘불가사의’라는 특정한 건물을 짓거나(Cultural Victory) ‘아폴로 프로그램’으로 로켓을 발사하면(Science Victory) 된다. 핵심은 적국보다 빨리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다. 유저가 선택한 문명 간에 다소간의 차이가 있지만, 누구에게나 발전하는 방법이나 목표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문명의 발전을 향한 경쟁은 결국 속도전이 되어버린다.

내가 제일 잘나가 세계박람회는 이런 속도전에서 자신들이 승리했음을 자랑하는 행사였다. 세계박람회의 연원은 1851년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공식 명칭은 ‘만국산업품 대전시회(Great Exhibition of the Works of Industry of All Nations)’, 즉 ‘만국의 산업품을 전시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사실상 당시 영국이 산업발전 경쟁에서 자국이 승리했음을 선전하는 것에 가까웠다. 이후에도 프랑스, 미국, 벨기에, 이탈리아 등 당시 가장 잘나가던 서구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세계박람회를 개최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런던의 수정궁과 파리의 에펠탑은 개최국이 스스로에게 수여하는 일종의 ‘트로피’였다. 세계박람회의 상징물이 대부분 타워 혹은 탑의 형태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박람회와 시드마이어의 문명 게임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속도전의 밑바닥에는 18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유행했던 문명개화론이 깔려 있다. 이 문명관에 따르면, 문명(Civilization)은 야만(barbarism)과 구별될 뿐만 아니라 더 우월한 것이다. 기술, 경제·사회· 문화 전반의 영역에 걸쳐 야만과 문명의 잣대가 적용되었다. 증기 여객선이 남아메리카 원주민의 카누보다 발전한 형태였고, 서구의 문학은 아프리카의 구전 동화보다 발달한 것으로 취급됐다. 문명화의 신봉자들에게 세상의 모든 건 야만에서 문명으로 단일하게 발전하는 것으로 보였다. 크고 빠르고 생산적인 쪽으로 진보하는 것. 서구인의 가치는 보편적인 것, 문명의 발전 과정과 결론은 모두 동일한 것, 결국 남은 것은 ‘속도전’뿐이었다.

아시아, 문명개화론을 전수받다 어른과 어린이의 예로 들어 보자. 어린이는 무언가를 가르쳐줘야 할 대상이다. 어느 꼬마가 산수를 배우지 않겠다고 선언하더라도 그건 인정되지 않는다. 어린아이의 판단력은 미약하니까 말이다. 서구에게 비서구는 어린아이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계몽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침략이 자행되기도 했다. 이 부분은 세계사 시간에 다 배웠던 것일 테니 넘어가고, 진짜 문제는 서구가 떠난 후에 일어났다. 아이러니하게도 문명개화론의 희생양이었던 동양이 서구의 논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이다. 동아시아 3국 중 서구식 ‘문명화’에 가장 기민하게 반응했던 일본은 ‘탈아입구(脫亞入歐,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 사회를 지향한다)’를 내세우며 본격적으로 ‘문명을 향한 속도전’에 돌입하게 되며, 후일 중국과 조선의 문명화를 선도하겠다며 침략을 시작했다. 1915년 조선총독부가 경복궁에서 개최한 ‘공진회(共進會)’ 역시 일종의 박람회였다. “총독부에서 새로운 정치를 시행한 지 다섯 해 된 기념으로 공진회를 개최하니, 공진회는 여러 가지 신기한 물건을 벌여놓고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구경하게 하는 것이거니와…”라는 안국선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공진회는 속도전에서의 승리와 그들의 우월함을 자랑하고 그들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자리였다. 아시아 국가들의 문명화 중독은 차례로 이어졌다. 제국주의 일본과 미군정의 영향을 받은 한국, 뒤늦게 성장지상주의에 빠진 중국 등.

동아시아의 박람회 열풍 최근 세계박람회의 메카는 동아시아가 아닌가 싶다.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를 시작으로, 75년 오키나와, 85년 쓰쿠바에서 3회에 걸쳐 세계박람회를 개최한 이래, 93년 대전, 2010년 상하이, 12년 여수에 이어 2018년 방콕, 22년 칭다오에 이르기까지 속도전에 열을 올리며 경쟁적으로 세계박람회 유치에 힘쓰고 있다. 지금의 동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계박람회 개최 경쟁은 19세기 유럽의 모습과 겹쳐진다. 다른 점도 있다. 19세기 서구의 세계박람회가 우월감을 자랑한 것이라면, 21세기 동아시아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박람회에는 열등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 ‘우리 이만큼 열심히 했으니 이제 인정해 달라!’ 문명화 논리가 불러온 속도전은 결국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막을 내렸다. 서구도 더 이상 자신들의 논리를 보편적인 것으로 강요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자성하는 시점이다. 이런 시기에 여전히 발전을 외치며 문명개화를 주장하는 동아시아 국가들이야말로 ‘문명’에 중독된 폐인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