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고 고대하던 <어벤저스(Avengers)>가 개봉했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헐크가 한 팀이 되어 싸우다니! ‘꿈같은 영화’가 개봉된다는 사실에 한동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한때 히어로물은 오덕후들이 숨어서 즐기는 마니악한 장르였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는지 <어벤저스>가 개봉 4일 만에 100만을 돌파했다. 이제 히어로물이 대중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장르로 자리 잡은 듯하다. 그런데 요즘 히어로물은 국적을 거론하며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미국산 히어로물이며, 인종주의를 비롯한 온갖 미국 주류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단 말이다. 멍청한 주장이다.
미국산 슈퍼 히어로들이 늘 한국에서 지금과 같은 인기를 누렸던 것은 아니다. 슈퍼맨과 배트맨, 혹은 아이언맨이나 엑스맨을 아는 사람은 많았지만, 일부 팬을 제외한 대부분은 무관심하거나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관심한 쪽은 슈퍼 히어로물을 말 그대로 ‘어린애 장난’으로 치부한다. 히어로에 이렇다 할 재미나 의미를 못 느끼는 부류로, 우리 부모님이 정확히 이에 해당한다. 비판적인 쪽은 슈퍼 히어로물이 어린애 장난일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으로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슈퍼 히어로물의 ‘은폐된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은 대개 이런 식이다. 슈퍼 히어로물은 나와 적의 대결 구도를 ‘착한 편’ 대 ‘나쁜 놈’의 구도로 끌고 간다. 피아(彼我) 구분을 선악(善惡) 구도로 대체하는 것이다. 또한 미국산 슈퍼 히어로에게 선(善)은 미국이고 악(惡)은 미국에 대항하는 자들이다. 넓게 보면, 미국적 가치와 헤게모니에 저항하는 자들은 모두 잠재적 악(惡)이고, 이 세상에서 악(惡)을 말살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슈퍼 히어로는 ‘미국의 일방주의’를 선전하기 위한 이념적 조작물에 불과한 것이다. 게다가 전적으로 물리적 폭력에 의존해 그들의 선(善)을 강제한다. 그러니 슈퍼 히어로는 매카시즘(McCarthyism)의 화신이고, 슈퍼 히어로물은 본질적으로 ‘반공 홍보물’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어벤저스>에서 인종차별과 반공주의를 읽어내려는 헛된 노력 히어로물은 이제 ‘즐길거리’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미국산 슈퍼 히어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슈퍼 히어로물을 단순한 홍보 수단으로 폄하하는 것도 공정하지 못하다. 대부분의 슈퍼 히어로가 1950~60년대, 그러니까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에 태어났고, 그들의 적이 대부분 나치 독일이나 소련이었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는 슈퍼 히어로가 정치적 기획물이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산’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미국산이기에 (의도적이든 아니든)당대 미국의 정치, 사회, 문화적 맥락이 반영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미국 사회가 가지고 있던 반나치주의, 반공주의, 일방주의, 제국주의, 백인우월주의, 남성우월주의 성향이 슈퍼 히어로물에 내포되는 것이다. 그것을 무조건 관용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특정 사회의 일방적 성향을 반영한다는 이유로 슈퍼 히어로물을 거부할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 역시 우리나라만의 성향이 반영되기 마련일 테니.
노골적으로 드러난 이데올로기 사실 슈퍼 히어로물은 ‘은폐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이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난 이데올로기’와 관련된다. 대립하는 가치 체계 간의 갈등을 은근히 설득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스펙터클한 액션 장르의 요소로 사용하는 셈이다.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선악 구도는 만들어 일종의 키치, 원래의 의미를 잃은 유치한 장식거리가 된다. 예를 들어 그래픽 티셔츠에서 나치의 선전선동 포스터를 갖다 붙여 귀여운 볼거리로 만드는 식이다. <어벤저스>를 보며 관객은 영화 속 선악 대립구도를 그저 재미로 받아들인다. 슈퍼 히어로물을 만드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도, 일방적 가치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일 만큼 멍청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이언맨의 주된 감상평은 “우와~ 차 좋다!”이지, “미국 짱!”이 아니다. 또한 슈퍼 히어로들은 이데올로기의 선전물이라기보다, 언제든지 ‘폭력의 독점자인 국가’를 위협할 수 있는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존재’로 이해되어야 한다. 스스로를 선의 편으로, ‘도덕적’ 존재로 설정하기 때문에 슈퍼 히어로들은 ‘무엇이 선인가? 무엇이 도덕적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존재이다. 그 과정에서 무조건적 충성이 바람직한지 고민(캡틴 아메리카)하고, 인간의 자격을 고민(헐크)하고,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갈 방법을 고민(엑스맨)하고,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고민(아이언맨)하고, 소시민으로서의 삶과 책임 사이에서 갈등(스파이더맨)하고, 장애의 의미와 극복을 고민(데어데블)하는 시도가 계속되어 왔다. 그 결과 최초에 백인, 근육질, 남성, 군인으로 대표되던 슈퍼 히어로의 세계에 다양한 인종, 능력, 성별, 직업, 신념과 가치관을 가진 슈퍼 히어로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히어로, 모두 서로 다른 인격체였더라 <어벤저스>는 “이처럼 서로 다른 이들을 어떻게 조화롭게 묶어낼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다. Avengers, 굳이 번역하면 ‘복수자들’이라는 이름의 슈퍼 히어로 연합은 ‘이데올로기적, 그리고 육체적으로 잘 훈련된 군대’라기보다, 정부 기관의 규율에 저항하고 서로의 다른 가치관과 개성을 주체하지 못하는 ‘문제아 집단’에 가깝다. 그들은 전 지구적 위기에 직면해서도 ‘복수’를 맹목적으로 추구하지 않는다. <어벤저스>의 핵심은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슈퍼 히어로들이 상호 간에 ‘공유된’ 가치와 목표를 형성해 나가고, 또 협동하는 것에 있다. 영화의 주된 내용 역시 그들이 하나의 목표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 자체에 주목한다. 모두가 예상하다시피, 영화의 결말은 어벤저스가 세상을 구하고는 다시 각자의 길을 가는 모습을 그리는데, 이 역시 그들이 집단 혹은 특정한 가치에 매몰되지 않은 개인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슈퍼 히어로는 미국적 가치를 보편인 양 포장하거나, 각자 자기의 가치가 보편이라고 주장하고 대결하기보다, 무엇이 보편인지 함께 고민하고 협력해 나가는 존재다. 물론, 이 역시 현재 미국 사회의 이념이 반영된 결과인 건 분명하지만, 이 속에는 반나치주의, 반공주의, 일방주의, 제국주의, 백인우월주의, 남성우월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미국 사회의 노력이 반영되어 있다. 만약 <어벤저스>에서 구태여 고민거리를 찾는다면 그건 영화의 바깥에 존재한다. 원작 그래픽 노블을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이번 영화에 모인 영웅은 원작과 다르다. 엑스맨과 스파이더맨이 빠져 있다. 폭스와 소니가 엑스맨과 스파이더맨의 영화 판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스템 덕에 영웅이 한 스크린에 모일 수 있었지만, 동시에 그 자본주의 탓에 모두들 모이지 못했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