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아프간인지 이라크인지 물었고 자네는 꽤 놀랐지.” “그래 어떻게 안 거야?” “안 게 아냐 본 거지.” “‘짧은 머리’, 그건 자네가 군인이라는 걸 의미하지. 병원 연구실에 왔을 때 ‘내가 있을 때완 다르군’이라는 자네의 말, 그 말은 자네가 성 바르톨로뮤 병원에서 수련했단 소리일 테고, 결국 자네가 군의관이란 말이 되지. 자네 얼굴은 좀 타 있었어, 하지만 손목 위론 타지 않았는데 그건 선탠이 아니라 파병을 갔다는 거지. 자네는 절룩거림이 심하긴 했지만 앉아도 되냐고 묻지도 않고 서있었지, 그건 자네 절룩거림이 정신적 이유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뜻이야. 그게 트라우마에 의한 절룩거림이라고 한다면 자네는 전상자(戰傷子)고, 거기에 검게 그을린 피부, 아프간 아니면 이라크지.” 영국 BBC 드라마 “셜록(Sherlock)”의 한 장면이다. 셜록 홈즈는 존 왓슨을 처음 만난 날, 무릎이 닿기도 전에, 왓슨의 신상을 턴다.
겉모습만 보고도 그의 과거를 꿰뚫어보는 사람이라면 ‘점쟁이’가 떠오른다. 점쟁이는 생년월일시, 외모, 손금만 가지고도 그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한다. 그렇게 낯선 이야기는 아니다, 수천 년간 인간은 자신들이 알 수 없는 영역에 대해 하늘, 태양, 동물, 귀신 등에게 물어보곤 했다. 세상에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은 극히 조그만 부분에 불과했으니까. 점쟁이가 ‘이유’나 ‘근거’를 제시하지만, 점쟁이의 설명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 게다가 점쟁이의 기술은 선택받은 자만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선택받은 자들, 그리고 그들로 구성된 집단이 어떻게 점괘를 내놓는 것인지, 애초부터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알 길이 없다.
세상에 설명 안 되는 건 없다 겉모습만 보고 과거를 꿰뚫어 본다는 점에서만 보면 홈즈는 점쟁이와 다르지 않다. 다만, 홈즈의 기술은 ‘점성술’이 아니라 ‘추리’라고 불린다. 눈에 보이는 것, 즉 관찰 결과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도출해내는 추리는 순수하게 합리성에 기초하고 있다. 즉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또 누구나 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한다는 뜻이다. 홈즈의 천재성이 부각되는 것은 다만 그가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이 기술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홈즈는 “다른 모든 가능성이 모두 소용없다면, 아무리 있을 것 같지 않은 일이라도 남는 것이 진실”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세상에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은 없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만약 아직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관찰이 부족했거나 관찰된 사실들 간의 관계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점쟁이가 지배하던 세계를 ‘주술의 세계’라고 한다면, 그 주술로부터 풀려나는 과정을 흔히 ‘탈주술화’라고 한다. 탈주술화된 세계에서는 그 이전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영역이나 주술에 의해 설명되었던 영역에 있던 것들을 합리적인 방식으로 설명하게 된다. 이 세계는 아직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 역시 언젠가 설명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희망 위에 존재한다. 이 세계의 이상대로라면 자유로운 개인은 그 머릿속에서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셜록 홈즈는 이 세계의 영웅이었다.
합리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도덕적이지는 않다
홈즈는 천재적인 추리 능력에 바탕해 경찰 수사에 조언을 제공한다. 그의 추리 능력이 너무 뛰어나 가끔은 경찰이 무능력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범인을 체포해 ‘법적으로’ 응징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홈즈는 경찰조차 해결하지 못한 난해한 문제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또 경찰은 홈즈의 도움을 받아 범인을 체포할 수 있기 때문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황인 셈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관찰과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그의 모습이 ‘인간적’으로 비칠리 없다. 때로는 ‘편집성 인격장애’를 의심하게 된다. 문득, 표면상 경찰을 돕는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홈즈에게 ‘정의감’이 있는 것일까 의문도 든다. 이러한 의심은 합리성과 도덕성 간의 관계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합리적 개인으로 자각할 때 도덕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균열이 발생했다. 홈즈와 그의 숙적 모리아티 교수와의 관계는 ‘합리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도덕적이지는 않다’는 인식을 반영하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풀기 어려운 문제를 내는 쪽이나 그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는 쪽이나 서로 대적하고 있을 뿐, 그 범죄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셜록’에서는 경찰이 홈즈를 범인으로 의심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하는 시점에서 이 세계의 영웅도 죽었다.
합리적 영웅의 최후 합리성이 개인의 도덕성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개인이 차지하고 있던 영웅의 자리는 ‘시스템’이 차지한다. 합리적 개인을 합리적 시스템으로 대체하면, 개인의 도덕성과 관계없이 시스템 자체가 (법률이 정한) 정의로운 목적에 봉사하도록 강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탐정기관이었던 ‘보스트리트 러너(Bowstreet Runner)’가 스코틀랜드 야드(런던 경시청)에 흡수된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하는데, 초기에는 홈즈 같은 능력을 가진 인물이 차츰 연방 수사국(F.B.I.), 중앙정보국(C.I.A.), C.S.I. 과학수사대 같은 정부 기관 직원으로 바뀌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홈즈처럼 추리 하나로 사건을 해결해내는 사립탐정의 모습을 기대하긴 어렵다. 특이 요즘 같은 세상에 홈즈같이 행동하면 오히려 범죄자 취급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주술에서 깨어난 자유롭고 합리적인 개인의 상징으로, 때로는 공권력을 웃음거리로 만들기도 하고 마약에 빠지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범죄해결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공공의 이익에 봉사한 이 세계의 마지막 영웅을 기억해야 한다. 이 영웅이 지금도 계속 회자되는 건, ‘시스템이라고 해서 반드시 도덕적이지는 않다’는 인식을 반영하는 건 아닐까. 더 읽을 거리 + + + + + 책. ‘주홍색 연구’ (아서 코난 도일) 셜록 홈즈라면 그 얼굴이 떠오를 정도로 익숙한 이름이겠지만, 어린이용 요약본이 아니라 완역본을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황당한 추리소설이 아니라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영웅으로서 셜록 홈즈에 관심이 생겼다면, 셜록 홈즈 시리즈 중 가장 먼저 발표된 이 작품부터 읽어보기 바란다. + + + + + 책. ‘추리소설의 논리’ (토마 나르스작) 프랑스의 추리소설 연구가인 토마 나르스작의 저서. 추리소설은 기본적인 흐름이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일반소설과 구분된다. 추리소설의 도덕적 가치, 추리소설과 민주주의, 추리소설과 종교, 추리소설의 작용 등의 내용이 흥미롭다. 다만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 적극적으로 추천하지는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