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어김없이 보게 되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토요일인지 아니면 일요일인지. 정확히 몇 시에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찌 된 일인지 주말 아침에 눈을 뜨고 TV 앞에 앉으면 꼭 보게 되는 그 프로그램은 동물에 대한 것이다. 대개 다쳐서 절룩거리는 동료를 보호하며 함께 이동하는 코끼리, 죽어가는 어미 곁을 떠나지 못하는 고양이, 강아지를 제 자식처럼 키우는 원숭이, 닭을 제 가족으로 생각하고 보살피는 개가 등장한다. 때로는 ‘인간극장’보다 더 감동적인 이 장면에서 어머니는 항상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짐승이 사람보다 낫다.”

제 가족도 아니고, 심지어 종이 다른데도 서로 배려하고 보살피는 동물들의 모습은 분명 감동적이다. 동물들이 서로를 위해 때로는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건 서로 상대의 슬픔이나 고통에 공감(共感)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동물들의 행동을 보며 감동을 받는 것도 공감하기 때문이다. 사람도 아니고 동물이 동정심(sympathy)이나 공감(empathy)을 느낀다는 주장은 이러한 감정이 사회적인 교육을 통해 강제되는 것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뒤집는 것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짧은꼬리원숭이에서 발견된 거울신경세포(Mirror neuron)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물도 공감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반드시 교육 통해서만 습득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물론, 공감은 동물보다 인간에게 더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내가 아닌 다른 존재의 슬픔과 고통을 안타까워하고 때로는 그것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적인 것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게다가 우리가 공감을 느끼는 대상 역시 같은 인간에서 북극곰, E.T., 아톰으로까지 확장됐다. 우리는 이제 말이 통하지 않는 대상과도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우리가 ‘공감의 시대(The Empathic Civilization)’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타인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다 그러나 지금이 공감의 시대라면, 과거는 분명 그렇지 않았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이 서로에게 공감을 느끼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흑인, 인디언, 유대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차별과 학살이 만연했었다. 인간에 대한 공감도 없던 때인데 동물이야, 자연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이미 역사책은 고래와 북극곰, 심지어 사람을 잡은 이야기로 가득 찼다. 공감하지 못하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된다. 친구를 집단 구타하는 아이들, 장애아동을 학대하는 어른들, 엄동설한에 세입자를 내쫓는 집주인, 최저임금은커녕 생존도 보장해주지 않는 고용주, 유리창 너머에서 99%의 외침을 안줏거리 삼아 샴페인을 마시는 금융가.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 동물들에게 미안할 지경이다. 이처럼 공감 능력을 상실한 인간들을 흔히 사이코패스(Psychopath)라고 부른다. 사이코패스 하면 대개 아무렇지도 않게 살인을 저지르고 심지어 그것을 즐거워하는 살인마가 떠오르지만 사실 사이코패시(Psychopathy), 즉 ‘반사회성 인격 장애’를 가진 사람 정도로 이해하는 게 적절하다. 사이코패스는 본인 스스로의 감정을 느끼는데 미숙하기 때문에 타인과 공감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반사회적인 인격을 보인다. 사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공감 없는 사람들 대부분은 사이코패스와는 다르게 자신의 감정은 잘 느끼지만 타인의 슬픔이나 고통에는 무심한 경우일 것이다. 이처럼 인류 역사상 유례 없는 공감(共感)의 시대는 타인의 슬픔과 고통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공감(空感)의 시대이기도 하다.

우리가 만들어낸 괴물, 공감불능자 사이코패스와 같은 반사회적 성향은 선천적 요인보다 후천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사람 자체보다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이 그들을 공감불능자로 만든다는 말이다. 결국 우리 시대의 공감불능자는 우리가 만든 인간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장애인을 멸시하고 폭행하지만 집에서는 정말 착한 아들/딸은 우리가 만들어낸 괴물이다. 그러나 환경이 공감불능자를 만든다는 말은 곧 공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적절한 관계 속에서 성장한다면 사회적 성향이 발달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공감(空感)의 빈 공간은 따뜻한 공감(共感)으로 채워야 한다. 이번 겨울은 모두 따뜻하기를.더 읽을 거리

+ + + + + ‘공감의 시대’ 제러미 리프킨 두껍다. 하지만 가볍다. 책이 두껍고 그 무게가 가볍다는 말이기도 하고, 리프킨이 제시하는 지식의 두께가 두껍지만 그 지식을 가볍게 전달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800쪽이 넘어가는 책이지만 “B급 책 10권 보느니 밤새워 씨름해 볼 만 하다”든가 “다양한 얘기의 맛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같은 평이 대부분이다. 책을 읽어보면 이러한 평가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 + + + + ‘공감과 도덕 발달 (배려와 정의를 위한 함의들)’ 마틴 호프만 최근 미국 교실에서 공감혁명이라는 것이 일어나고 있다. 공감혁명은 공감 개발을 강조하는 새로운 교육 방식을 말하는데, 이러한 변화와 관계된 책 중 하나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주로 공감의 교육과 그 도덕 심리학적 의미를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