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박경신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은 방통위에서 ‘시정 요구’를 내린 성기, 폭발물 제조법을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전체 공개’로 게재했고 이에 방통위는 박 위원의 블로그를 심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편 여성가족부는 음반·음악파일 등을 대상으로 청소년에게 유해한 노래 가사 등을 심의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유통을 제한하겠다고 나섰다. 원래 아무 문제없이 듣던 음악을 청소년 유해물로 분류하는데다 그 주체가 뭐만 하면 욕을 먹는 여성가족부이기에 방통위 사건에 비해 비판의 수위가 한껏 높아졌다. 이런 종류의 검열은 예나 지금이나 존재해왔고, 술, 담배, 성행위, 폭력 등이 묘사된 매체가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치는가 그렇지 않은가 따위의 식상한 논쟁이 또 반복된다.
보호라는 이름의 검열 여성가족부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2006년 11월 ‘음반 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이 폐지되면서 음반·음악파일의 청소년 유해성 심의·결정 업무를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舊)국가청소년위원회가 담당하고 있었다. 이후 해당 업무가 2008년 보건복지가족부로 이관되었다가 2010년 3월 정부조직 개편에 의해 청소년정책 및 청소년보호법의 소관 부처가 보건복지가족부에서 여성가족부로 이관되면서 현재 음반·음악파일 심의를 담당하는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운영 관련 업무를 여성가족부에서 수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고래사냥’에서 ‘시대유감’에 이르기까지 예전부터 음반, 음악을 검열해오던 주체가 최근에 여성가족부로 바뀐 것일 뿐이다. 여성가족부가 내놓은 계획에 따르면 매년 3만 곡을 모니터링해서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음반을 심의해야 한다는데, 여성가족부 청소년 매체 환경과 인원이 몇 명인지는 몰라도 매체가 음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얼마나 고된 일이겠는가. 웬만한 음악 평론가보다 음악을 더 많이 들어야 하는 입장에서, 판단하기 애매한 것이 대부분이라 규정을 구체화해서 일괄 적용하다 보면 ‘이건 아닌데’ 싶은 것도 부지기수일 수밖에 없다. 지금의 사태는 결국 이러한 관료적 행태에서 비롯된 결과일 뿐이다. 여성가족부는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이러한 업무를 수행한다.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을 유해한 것들로부터 보호하자는 내용을 법제화한 것으로, 해당 법 10조에 다음과 같은 것들을 청소년 유해물로 규정하고 있다 : 1. 청소년에게 성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선정적인 것이거나 음란한 것, 2. 청소년에게 포악성이나 범죄의 충동을 일으킬 수 있는 것, 3. 성폭력을 포함한 각종 형태의 폭력 행사와 약물의 남용을 자극하거나 미화하는 것, 4. 청소년의 건전한 인격과 시민의식의 형성을 저해하는 반사회적ㆍ비윤리적인 것, 5. 기타 청소년의 정신적ㆍ신체적 건강에 명백히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것. 읽어봐서 알겠지만 너무 당연한 것이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당연히 이런 것들이 소극적으로나마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금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이번 여성가족부의 검열에 대한 반발 역시 술이나 담배라는 단어가 들어간다고 무조건 유해물로 분류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주장, 즉 그들의 관료적 행태를 비판한 것이지, 그렇다고 모든 검열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모두들 청소년은 마땅히 보호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신이 청소년일 때, 스스로를 미성숙한 존재로 보고 보호되고 검열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가? 아니, 서태지의 ‘시대유감’이 instrument 버전으로만 발매되었을 때, DJ DOC의 앨범이 19금이라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을 때 어떤 생각을 했는가?
검열 권하는 사회 왜 청소년들에게 작위적이고 명시적인 검열이 가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왜 관용하지 않는 행위인 검열을 관용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일까? ‘어쩔 수 없는 검열’따위의 말을 할 수 있는 건 검열이 우리에게 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정, 학교, 직장, 사회, 문화, 종교, 언론, 정치, 경제 등 모든 영역에서 검열이 존재한다. 선생님의 체벌보다 국정교과서가 더 훌륭한 사상검열 수단으로 작동한다. 정부와 기업의 주장에 순응하는 기사를 쓰는 것은 쉽지만, 그에 반하거나 그것을 비판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엄청난 연구와 자료가 요구될 뿐만 아니라 이후에 있을 소송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술자리에서 정치, 종교를 다루면 안 되지만 간통, 이혼, 복수, 폭력이 판치는 막장 드라마나 이 시대의 섹스 심벌들이 눈요깃 거리를 제공하는 음악 프로그램은 허용된다.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필터링’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검열은 물리적인 폭력이 동반되는 검열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우리 삶을 통제한다. 촘스키(Avram Noam Chomsky)가 말했듯이 “언론과 교육기관에는 복잡한 필터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어서, 반정부적 관점은 아예 배제되거나 아니면 주변으로 밀려나게끔 되어”있다. 그에 따르면 책임 있는 비평가들 역시 “자유 아래서의 세뇌 활동(brainwashing under freedom)”의 주체일 뿐이다. 사회 속에 만연한 검열 문화에 따라 주장과 비판, 그 모든 것이 “용인 가능한” 입장 내에서만 움직이게 되고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자체 검열에 익숙해져 있을수록 잘 적응하고 스스로가 ‘용인’된 범위 내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그리고 미성숙한 청소년, 친구, 동료 시민들도 이 범위 내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바란다. 이런 의미에서우리 사회는 자발적 검열 공동체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누구도 모든 종류의 검열이 완전히 철폐되어야 한다고 ‘감히’ 말하지 않는다. 국가보안법 폐지론자도 청소년보호법은 반대하지 않는다. 사실 매번 이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큰일인 것처럼 난리를 피우지만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검열하는 쪽도 당하는 쪽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박경신 위원은 문제가 된 글을 블로그에서 자진 삭제했고, 청소년들은 심의 대상인 곡을 평소에 그랬던 것처럼 다운로드 받을 것이다. 우리는 검열에 익숙하니까 검열에 순응하거나 검열의 눈을 피하는 방법에도 익숙하다. 가장 자유로워야 할 사적 영역에 쓴 글도, 현수막에 그린 쥐 그림도 비난과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되고 또 그러려니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 한마디 잘하면 남산 밑에 끌려가서 물, 전기, 욕설 등을 ‘무상 지급’해줬다는데, 지금은 고소할 뿐 예전같이 무상고문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만으로도 참 감사할 일이다. 북한에서 자행되고 있다는 사상 통제가 여기에서도 작동하고 있는 걸 보면 검열이야말로 북한의 소행일지도 모른다.
+ + + + +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제7조 「별표1」의 주옥같은 조문을 감상해보자. ‘2. 개별 심의기준. 가. 음란한 자태를 지나치게 묘사한 것, 나. 성행위와 관련하여 그 방법?감정?음성 등을 지나치게 묘사한 것, 다. 수간을 묘사하거나 혼음, 근친상간, 가학?피학성 음란증 등 변태성행위, 매춘행위 기타 사회통념상 허용되지 아니한 성관계를 조장하는 것, 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행위를 조장하거나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기술하는 등 성윤리를 왜곡시키는 것’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