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크 스트로스 칸(Dominique Strauss Kahn) 前 IMF 총재가 성폭행 혐의로 구속되었다. (장하준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계은행, WTO와 함께 ‘사악한 삼총사’로 불리는 IMF의 수장이 범죄를 저질렀기에, 혹자는 이번 사건을 두고 ‘(강제적 합의 하에) 제3세계를 괴롭히는 IMF의 수장이 역시나 제3세계 여성을 괴롭혀놓고 합의에 의한 것이라고 우기고 있다’고 비판한다. 호사스런 생활로 ‘샴페인 사회주의자’(champagne socialist)라는 오명을 얻은 그의 이미지가 ‘돈 많은 변태’를 연상시키기 쉬워서인지 몰라도, 그에 대한 가십은 비판보다는 비난의 색이 짙다.

위기의 IMF 요즘엔 “간 때문이야”라고 하지만, 10여 년 전에는 모든 게 IMF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1997년 금융 위기가 발생했을 때 IMF로부터 차관을 빌린 것인데, 어찌된 일인지 전후사정은 제쳐놓고 ‘아엠프 때문이야’라는 말만 남았다. IMF는 국제통화기금(IMF : International Monetary Fund)이라는 풀네임에서 알 수 있듯이 가입국들이 돈을 모아 기금을 구성하고, 이것으로 ‘국제수지가 위기 상황에 처한 나라들이 디플레이션 정책을 사용하지 않고도 국제수지 적자를 줄일 수 있도록 차관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제기구다. IMF는 위기에 빠진 국가를 도와주고 그 위기가 번지지 않도록 하기위한 안전장치이지 비난의 대상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러나 막상 위기에 직면해 IMF로부터 돈을 빌리려고 할 때, IMF의 본색이 드러난다. IMF가 차관을 빌미로 채권국(부자 나라)에게 이익이 되지만 채무국에는 손해가 되는 조건을 수용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세계은행과 IMF는 1944년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전후 국제경제 관리체계 구상에 따라 설립되었으며, 세계은행은 미국, IMF는 유럽에서 총재가 선출되어 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미국은 IMF에서 자본금 액수에 따라 가장 큰 결정권을 가지고 유일무이한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자신의 이해가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고수하고 있다. 문제는 IMF가 지나치게 부자 나라들의 이익만 대변하기 시작하면서 붉어졌다. 일례로, 차관 조건으로 IMF의 간섭을 받아들인 많은 개발도상국들에서 성장 저하, 불평등한 소득 분배, 경제 불안정이 오히려 심해졌다. 게다가 IMF가 예측하지 못한 금융 위기가 계속해서 발생하자 위기를 예방하고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할 IMF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상대적으로 낮은 대출 금리(5%)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가들이 IMF의 간섭을 거부하기 위해 금융지원 자체를 거부하거나 되도록 빨리 상환하는 방법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평판도 실적도 나빠진 IMF는 2000년대에 접어들어 본격적으로 위기에 빠지게 된다. IMF가 “내가 만약 위험할 때면~ 누가 나를 도와주지?”라고 물었을 때, 그 남자가 등장했다.

위기의 남자 2007년 말 스트로스 칸이 IMF의 10번째 총재로 부임했을 당시 IMF 총재 자리는 망해가는 축구 클럽 감독직과 비슷한 것이었다. IMF는 이미 신뢰를 잃은 상태였고,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인재들 중 상당수가 제 발로 IMF를 떠난 상태였다. 2007년 IMF의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IMF에는 권위주의적이고 급진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내부의 경제학자들이 위기 발생에 대해 우려하더라도 대체로 주류 의견에 편승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IMF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칸은 IMF의 주류 자체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칸은 총재 시절 IMF가 ‘신자유주의의 첨병’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의 핵심으로, 그는 “차관국의 경제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그 나라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하면서, 차관지원협정서 서명 하나로 국가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도록 차관 지원 계획을 수정해나갔다. 차츰 하락세에서 정상 궤도를 찾아가던 도중, 칸과 새롭게 변화한 IMF의 싱크탱크는 2008년 금융위기가 예상되며, 세계적인 경기 부양 대책을 활용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다행히도(?) 금융 위기에 대한 칸의 주장이 현실이 되면서 IMF는 급속도로 상승세로 접어들게 된다. 양적인 측면에서 2007년만 해도 20억 달러에 불과하던 IMF의 차관 지원액이 2000억 달러로 증가되었고, 보유액은 2500억 달러에서 9천억 달러에 육박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2009년 리먼브라더스사의 파산과 함께 절정을 맞게 되는데, IMF에 금융 감독 권한이 주어졌으며, 감독 대상에 미국이 포함되는 일대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물론 푼 것보다 풀어야 할 숙제가 더 많은 상황이었지만, 칸은 신용공여제도를 도입하여 대출 조건을 한층 완화시키는 한편, 서로 적대적 관계에 있는 국제노동기구(ILO)와 공동 회의를 개최하는 등 본질적인 변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갔다. 그리고 2011년 5월, 위기에 빠진 IMF를 구하던 스트로스 칸이 위기에 빠졌다. 프랑스 산업무 장관, 사르셀 시장, 재무부 장관을 거쳐 IMF 총재가 된 인물. 프랑스 사회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 돈, 권력, 명예를 모두 가진 이 남자가 뉴욕의 한 호텔에서 성폭행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JFK공항으로 도망쳤다가 경찰에 체포된 것이다. 지난달 16일 법정에서 그는 1급 성폭행 2건, 1급 성폭행 미수 1건, 1급 성희롱 1건, 2급 불법 구금 1건, 강제접촉 1건, 3급 성희롱 1건 등의 혐의로 심리를 받았다. 덕분에 그의 여성편력이 다시 한 번 도마 위에 올랐고 과거의 피해자들도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온갖 음모론이 제기되고 칸 본인도 “합의 하에 한 것”이라고 항변하고는 있지만, 판결이 어떻게 나오든 스트로스 칸은 이제 사회적으로 고인(故人)이 된 셈이다. 죽어가는 IMF를 살리려다 위기에 빠진 남자. “칸이 만약 위험할 때면~ 누가 칸을 도와주지?”

+ + + + +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잡’ 찰스 퍼거슨.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비하면 영화 <부당거래>는 애교다. MIT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미국 경제의 깊숙한 곳까지 경험한 감독이 만든 이 다큐멘터리는 “어떤 공포영화보다 무서운 경제 호러”라는 극찬(?)을 받은 바 있다.

+ + + + + 책. ‘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무거운 내용이 가볍게 읽히는, 두 말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다. 소위 ‘주류 경제학자’들로 구성된 IMF,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향해가는 세계가 왜 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지 궁금하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동 저자의 <사다리 걷어차기>를 함께 읽을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