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일의 코스피가 닷새만에 최고치를 경신했고, 농심 새우깡ㆍ양파링 출고가가 7%안팎으로 인상됐으며, 빈 라덴이 죽었다. 마치 영화처럼 미국 특수부대가 스텔스 헬기를 타고 파키스탄의 한 가옥에 접근해 오사마 빈 라덴의 일행을 사살했고, 시신을 수장했다. 빨간 X자가 그어진 그의 얼굴이 타임지 표지를 장식했다. 히틀러 이후 네 번째였다. 전 세계 언론이 빈 라덴의 죽음을 타전했지만, 사실 이날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인들이 약간은 경멸스러운 어조로 부르는 오사마(본명 우사마 빈 무함메드 빈 아와드 빈 라덴)는 57년생 한국 나이로 올해 55살짜리 아저씨다. 사우디아라비아 최대의 건설 회사를 세운 아버지 덕에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그는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전쟁에 참가했다. 자기 나랏일도 아니었지만 무슬림이기에 기꺼이 타국의 전쟁터로 뛰어들었고, 20대 초반의 나이에 아버지가 물려준 막대한 유산으로 의용군을 조직해 도로 건설, 난민 구호, 병참 업무 등을 담당했다. 10여년 간의 전쟁 끝에 소련은 퇴각했고, 오사마는 고향으로 돌아가서는 아프가니스탄 참전용사를 위한 복지기구를 건립했다. 당시 전우는 그를 이렇게 추억한다. “그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영웅이었다. 항상 최전선에 서서 그 누구보다 용감하게 싸웠다. 그는 스스로 왕궁 같은 자신의 집에서 걸어 내려와 아프가니스탄 농민, 이슬람 전사들과 함께했다. 그들과 음식을 만들고 식사하고 참호를 팠다. 그것이 바로 민중과 같이하는 ‘빈 라덴의 방식’이었다.”

빈 라덴이라 쓰고 악당이라고 읽는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오사마 빈 라덴은 영웅은커녕 사람도 아니다. 억지로 덧씌워진 음모론을 벗겨내더라도 그의 악행은 웬만한 악당을 넘어선다. 1996년 트럭 폭탄 테러, 1997년 이집트 여행객 총격 피살사건, 1998년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국 대사관 동시 폭탄테러, 그리고 2001년 9·11 테러 등 수천 명을 죽인 비극적인 사건의 배후로 지목됐고, 그를 잡기 위한 전쟁에서도 역시 수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가 나왔다. 어떤 이는 안중근 의사와 비교하고, 자국에선 독립투사였다고 옹호하지만, 무고한 사람은 그 어떤 설명으로도 무고하긴 마찬가지, 그 죽음의 책임을 피할 순 없다. 누군가는 그의 죽음으로 정의가 실현됐고, 그의 테러행위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넋을 기릴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 누군가는 그가 사살됨으로써 국제사회가 좀 더 안전해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세계 각국 정부는 테러경계 강화지시를 내렸다. 이상하다. 영화에서는 악당이 죽으면 해피엔딩으로 끝나던데? 빈 라덴의 죽음에도 ‘평화’라는 이름의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지 않는 것은 실제로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사마라는 이 ‘악당’은 어릴 때 학대 받았던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사람 죽는 모습에 즐거워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무슬림들의 일반적인 정서를 가진 이었고 그것을 잘못된 방법으로 드러냈을 뿐이다. 서방의 다국적 기업과 정부가 아랍 독재자들과 짜고 아랍 민중의 고혈을 착취하는 데 대한 분노, 무슬림의 신성한 공간이 타문화에 침범당하는 것에도 분노. 이런 분노가 오사마가 성전 혹은 살인을 하게 된 이유였다. 성전이었든 살인이었든 근본 원인이 해결되지도 않았기에 ‘테러와의 전쟁’이란 묘한 영화는 끝이 나질 않는 것이다.

테러와의 영원한 전쟁 ‘국제법은 힘이 정의다’라는 말이 있다. 국제법을 ‘약간’ 어기고 이라크를 공습한 미국 정부의 행동은 이미 지나간 일이고, 국제법을 ‘많이’ 어기고 쌍둥이 빌딩을 공격한 빈 라덴은 처벌을 받는 현실을 꼬집은 말이다.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 자체가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다. 직업군인이자 전쟁 이론가였던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므로 전쟁은 정치의 연장인 셈이다. 따라서 정치를 동반하지 않은 전쟁은 무가치한 것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전쟁은 어떤 분명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해야 한다는 뜻이다. 전쟁엔 상대가 있고, 상대에게 자신이 원하는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든다는 게 최종 목표다. 그런데 알 카에다와의 전쟁도 아닌, 빈 라덴과의 전쟁도 아닌, 테러 자체와의 전쟁에 상대는 누구인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미국, 아니 좋게 봐서 서구 문명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전체가 테러인가. 게다가 폭격과 총질을 통해 그들이 ‘아이고 무서워. 이제 미국에게는 까불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들겠다는 것인가. 테러와의 전쟁은 결국 전쟁과 전쟁을 벌이는 꼴이어서 결코 끝나지 않는다. 정의롭지도 못하다. 바로 잡으면 ‘국제법은 법이 정의’다. 정의(正義)란 건 문화에 다르게 정의되기에 국제사회에선 합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정치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강조되고, 정치를 통해 법적 장치를 마련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국제사법재판소 역시 그러한 장치다. 빈 라덴이 영웅과 악당의 모습을 모두 가지는 한 ‘평화를 설립하기 위한 정당한 전쟁’과 ‘자기 방어를 위한 정당한 전쟁’ 사이에서 ‘영원한 전쟁의 상태’가 계속될 뿐이다. 5월 2일 벌어진 일 중에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은 전쟁 중인 국제 사회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 했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셈이다. 읽고 볼 것

+ + + + + 기사. ‘My Father, the Terrorist’(Omar bin Laden) 2009년 10월 28일, Vanity Fair라는 잡지의 홈페이지에 실린 독점 기사이다. 오마르 빈 라덴이 그의 아버지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해 쓴 글이다. 인간 빈 라덴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 www.vanityfair.com/politics/features/2009/10/omar-bin-laden-200910

+ + + + + 책. ‘테러리즘 누군가의 해방 투쟁’(찰스 타운센트) “당신에게 테러리스트는 다른 누군가에는 해방의 전사일 수 있다”는 상대주의적 관점에 바탕하고 있지만, 테러리즘을 옹호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다만 테러리즘의 정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할 때 정치가 시작되고,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