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자유를 맛본 자유인은 지배자가 무엇을 하든지, 어떠한 조치를 취하든지 … 결코 잃어버린 자유와 고대의 제도를 망각하지 않는다”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난 2월 15일 벵가시에서 시작된 리비아의 반정부 시위는 ‘자유’를 위한 투쟁이었다. 40년이 넘는 기간동안 카다피 가족과 가신들이 모든 권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모든 법은 카다피로부터 나왔다. 부정부패, 매관매직, 가혹행위가 잇달았다. 이집트나 튀니지에서와 마찬가지로, 반정부 시위의 촉매는 SNS였다. 2월 17 카다피 정권에 반대하는 ‘분노의 날(Day of Anger)’ 행사가 계획됐고, 이 행사는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하면서 유혈사태로 끝났다. 2월 21일엔 전 세계의 리비아 대사들이 유혈사태에 항의하며 사임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카다피는 그의 아들들에게 군인들을 동원해 시위대를 ‘제거’하도록 지시했고, 결국 참다못한 시위대는 무장을 한 채 카다피 정부군에게 대항했다. 한때 반정부 세력은 그 영향력을 수도 트리폴리까지 확장했지만, 정부군은 강력한 화력을 바탕으로 이 반정부 세력을 거점인 벵가시까지 밀어냈다.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 UN 안전보장이사회는 이튿날 부랴부랴 결의안을 투표에 붙였고, 15개국 중 중국, 러시아, 독일, 인도, 브라질 5개국이 기권하면서 결의안이 통과됐다. 채택된 안보리 결의 1973은 “카다피군의 공격을 받고 있는 민간인과 민간인 밀집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승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일, 카다피군은 벵가시에 대한 공격을 계속했고,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5개국 연합군은 리비아 방공시설을 미사일로 공격했다. 지금 우리가 TV로 시청하고 있는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카다피는 “서방국가의 군사행동은 식민지 침탈적 행위이자 야만적이고 부당한 침략행위”로, “리비아는 당신들의 것이 아니라 리비아 국민의 것으로, 우리나라에 간섭하게 되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정당한 개입 리비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에 서방 국가들의 이해타산이 깔려있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이번 연합군의 내건 인도주의의 기준 자체가 서구의 역사적 맥락에 기초하고 있음을 부정하기도 힘들다. ‘자유’를 중심으로 한 기본적 인권이 보편적인 가치로 인정되고 있지만, 한 국가에 개입하는 행위는 엄밀하게 말해 국제인권법과 국제인도주의법의 범주를 넘어서는 일이다. 그러나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는 최소한의 인권을 보편적 가치 기준으로 삼고 있다. 국내 문제라는 이유로 수백만의 유대인과 집시, 소수 민족이 학살당했던 사건 이후 더 이상 국경은 절대적인 방어막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국제법적 차원에서 인도주의적 개입은 ‘예외적 불법성’ 또는 ‘사면론’에 바탕해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연합군의 공격이 침탈이 아니라 정당한 개입이 되기 위해서는 국제법적 해석보다 개입의 정당성(authenticity)이 증명돼야 한다. 왈쩌(Michael Walzer)는 전쟁의 각 단계에 대한 정당화를 전쟁 개시의 정의(Jus ad bellum), 전쟁 수행의 정의(Jus in bello), 전쟁 종결의 정의(Jus post bellum)라고 구분한다. 이러한 구분에서 주목할 것은 전쟁에 대한 정당화가 전쟁이 시작된 지금의 시점뿐만 아니라, 전쟁의 진행/종결 과정 모두에서 이루어져야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인도주의적 명분을 내걸고 시작한 지금의 전쟁은 목적, 방법, 결과 모두에서 인도주의적이어야 한다. 이라크에선 일부 적대 세력을 색출하기 위한 작전 탓에 상당수 이라크인이 고문과 모욕을 당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선 전차가 민간인을 깔아뭉개고 다니는 ‘부수적인 피해’가 끝없이 일어났다.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은 시작부터 국제 사회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등 정당성이 부족했기도 하다. 이번 리비아 사태 개입처럼 시작이 UN을 비롯한 국제 사회의 지지를 얻으면서 시작해도 과정에서 삐뚤어지기 쉽다. 동료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군인들에겐 자칫 낯선 주민들에 대한 공포와 증오가 솟아오를 수 있고 우발적인 인권침해가 이어져 주민들의 반감을 살 수도 있다. 그래서 인도주의적 전쟁은 어렵다.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고, 실수가 생기면 바로 바로잡아야 한다. 이렇게 어려운 인도주의적 전쟁을 고민하다 보면 항상 사전 예방이 아쉽다. 지금도 리비아 사태에서 죽은 사람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굶주림으로 고통 받고, 훨씬 많은 이들이 자유가 없는 상태로 고통 받고 있다. 어려운 전쟁까지 가기 전에 국제 사회가 좀 더 노력할 수는 없을까.
+ 책. ‘만민법’ – 존 롤스. 미국 현대 자유주의 논의의 중심에 서 있던 대학자의 유작. 일평생 정의의 문제를 논하던 그가 국제사회, 아니 만민의 사회에 대한 혜안을 정리한 책.
+ 영화. ‘호텔 르완다’ – 테리 조지. 아주 옛날도 아닌, 1994년 르완다에서 발생한 끔찍한 사건을 그린 영화. 스포일러가 되지 않기 위해 주인공이 살아남을지 죽을지는 말해줄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