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외계인과 관련된 영화 두 편이 개봉했다. 그 중 하나인 『월드 인베이젼(World Invasion)』은 외계인의 지구 침공을 다룬 영화이고, 다른 하나인 『황당한 외계인 : 폴(Paul)』은 외게인의 지구 방랑기를 다룬 영화이다. 최근에는 외계인과 관련된 뉴스 두 가지가 보도되었다. 그 중 하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현장 주변에 U.F.O.가 등장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1979년 U.F.O.가 8000마리가 넘는 소들을 납치 ․ 실험했다는 내용이 적힌 美 연방수사국(FBI) 요원의 메모가 공개된 것이다 . 빵상 아주머니처럼 외계인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믿지는 않더라도, 친구든 적이든, 진실이든 거짓이든 외계인이 우리 삶 속에서 깊숙이 침투한 것은 사실이다.

이 세계 밖의 외계인 실제 외계에는 박테리아에서부터 인간보다 발전된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외계인보다는 외계 생명체(Extraterrestrial Life)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외계 생명체는 이 세계 밖에서 나고 자란 모든 생명체, 달리 말해 이 세계에 있을 법하지 않은 모든 생명체를 포괄하는 의미로 종종 사용된다. 하지만 우리의 인식 속에 외계 생명체는 인간과 유사한 형태의 지적 생명체인 외계인의 이미지가 지배적인 것이 사실이다. 외계인(外界人)은 문자 그대로 ‘이 세계 밖에서 온 사람’을 지칭한다. 굳이 말하자면 외계인이라는 단어에는 이 세계 안(內界)과 이 세계 밖(外界)의 구분이 전제되어 있고, 또한 세계 안과 밖에 속해있는 사람이 각기 이질적이라는 구분이 내포되어 있다. 이 이질성은 절대 넘을 수 없는 ‘출생의 비밀’에서 비롯되는데, 때문에 슈퍼맨(Superman)은 지구를 수 십바퀴 거꾸로 돌려도 외계인이고, 지구방위대 후레쉬맨(超新星 フラッシュマン)은 비록 외계인에게 납치되어 지구에 오래 머물 수 없는 몸이 되었을지라도 지구인이다. 심지어 외계인에게 납치되어 초능력을 얻게 된 둘리는 공룡임에도 불구하고 일단 지구인(공룡)이고, 빨간 코를 빼면 고길동보다 더 인간적인 도우너는 어쩔 수 없는 외계인이다. 이 세계 밖에서 나고 자란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생각의 연원은 아마 고대(古代)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후대의 것이기는 하지만, 고대 문명에서 세계 밖의 존재에 대한 언급을 발견할 수 있고, 나아가 세계 밖의 존재인 외계인을 신(神)으로 숭배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종종 제기된다. 그러나 이 세계 밖에 대한 생각이 본격적으로 확장된 것은 망원경이 등장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망원경은 시야 너머에 있던 세계를 볼 수 있게 해주었고, 동시에 그 세계 너머에 대한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했다.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와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망원경 너머의 세계, 즉 외계(外界)를 탐험한 상징적 인물들이다. 이후 지구뿐만 아니라 태양조차 수많은 별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폭로되면서, 이 세계 밖에 대한 관념은 점차 팽창하는 우주처럼 확장되어갔다. 그러나 콜럼버스가 자신의 인식적 세계 밖(外界)에 존재하던 인디언을 만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외계인과 조우하지 못했다. 대신 외계인을 개별적 개채가 아니라 하나의 집단으로 인식하듯이, ‘이 세계’를 하나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고, 지구상의 전 인류를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인식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세계 밖의 외계인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덕분에 콜럼버스도 인디언도 이 세계 안의 지구인으로 만나게 되었다.

이 세계 안의 외계인 이 세계 안에서 나고 자란 외계인도 있다. 바로 대중문화 속의 외계인이다. 1897년 공상과학 소설가인 웰스(H. G. Wells)의 소설 『세계전쟁(The War of the Worlds)』에는 큰 머리에 긴 손가락을 가진 회색 외계인(Greys)의 원조격인 화성인(Martian)이 등장하여 지구를 침략한다. 침략자 화성인이야 말로 한 쪽에서는 과학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기댄 산업혁명이, 다른 한 쪽에서는 합리성에 기초한 탈주술화가 유행처럼 번지던 19세기에 등장한 외계인의 대표적인 형태였다. 고대의 신화와 종교를 비롯한 여러 미신적 믿음에 대한 광범위하고 청체적인 계몽이 한창이던 시기에, ‘과학적’ 근거를 등에 업은 새로운 미신이 등장한 것이다. 20세기에 접어들어 외계인에 대한 상상력은 사그라지기는 커녕, 195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소위 ‘우주의 시대(Space Age)’를 맞이하기에 이른다. 이 시기 U.F.O. 목격담과 외계인 납치 경험담 등 외계인과 관련된 여론이 들끓었고, 마제스틱12(Majestic 12)를 비롯하여 최근 공개된 여러 문건들에서 당시 美 정부 역시 외계인에 비상한 관심을 가졌던 정황이 밝혀졌다. 이후 외계인은 미국 대중문화의 주요 코드로 자리잡았고, 스타트랙(Star Trek), 스타워즈(Star Wars), 브이(V), 이티(E.T.), 알프(ALF), 엑스파일(X-File) 등 외계인을 다룬 주요 작품들만해도 언급하기 벅찰 정도이다. 대중문화에서 외계인이 외계 생명체의 대표 이미지로 자리매김한 것은 그들이 소통이 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대중문화에서 외계인은 소통이 아니라 투쟁과 갈등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대중문화 속 외계인 대부분은 인류를 뛰어넘는 기술이나 초능력을 앞세워 지구를 식민지화하거나 인류를 말살하기 위해 지구를 침공한다. 물론 이들 중에 가끔 모성(母星)이 불모지가되어 살 곳을 잃었다는 슬픈 사연을 갖는 경우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정체를 숨기고 지구인을 도와주는 외계인 친구들도 있지만, 대개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미친 존재감’으로 인해 인간에게 이용당하고 배신당하기 때문에 슬프기는 마찬가지다. 이들 때문에 지구가 외계인들의 싸움터로 전락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외계인 또는 외계 생명체가 우리가 속해있는 이 세계에 있을법하지 않은 것을 총칭하는 의미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적어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계 안의’ 외계인은 인간의 상상력이 구축해낸 하나의 관념적 대상으로 존재한다. 인간과 조우할 수 있을 정도의 지적/기술적 능력을 가진 미지의 존재를 상상하는데 있어 인간적인 것이 투영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세계 안의 외계인은 인류를 비추는 거울이며, 우리 세계 밖의 존재에 대해 우리의 상상력이 빚어낸 조형물이다. 저명한 우주과학자인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역시 “외계인이 과거 미국에 정박한 콜럼버스일지 모른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침략자 콜럼버스를 닮은 외계인은 세계 밖의 존재를 잠재적 침략자로 생각하는 우리의 세계관에서 나고 자란 ‘이 세계 안의 외계인’이다. 소통이 가능한 존재를 만났을 때 한쪽은 콜럼버스, 다른 한쪽은 인디언이어야만 할 필요는 없다. 외계인이 콜럼버스일지 모른다는 주장은 결국 세계의 안과 밖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콜럼버스적이라는 것을 방증할 뿐이다.

“이 넓은 우주에 우리뿐이라면 그것은 얼마나 큰 공간 낭비이겠는가”라는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의 말처럼 진짜 이 세계 밖에 화성인이 있을지도 모르고, 언제가 「화성인 바이러스」에 진짜 화성인이 출연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만의 좁은 세계 속에서 밖의 존재를 침략자로 보는 지구인들은, E.T.가 알려준 것처럼, 먼저 자기들끼리 검지손가락을 마주하는 연습부터 해야 할 것이다.

더 읽을거리

+ 영화. ‘디스트릭트 나인(District 9)’ 닐 블롬캠프(Neill Blomkamp).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인근의 외계인 수용구역을 다룬 공상과학 영화아다. 주인공에 초점을 맞추면 카프카 변신의 현대판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외계인 영화의 껍데기를 벗기고 보면 지금 이 세계 곳곳에 있는 난민촌의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어쩌면 난민촌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촌의 모습인 것도 같다. + 책.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더글러스 애덤스(Douglas Noel Adams).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이자 앞으로 외계인 친구를 사귀게 될 지구인들을 위한 안내서이기도 하다. 공상과학물에 대한 약간의 오덕을 갖춰야 즐겁게 읽히는 책이기는 하지만,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안내서나 설명서는 항상 제목만큼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