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소셜 네트워크의 시대다. 미니홈피, 블로그, 마이스페이스, 페이스북, 트위터 중 하나라도 하지 않았다가는 시대에 뒤쳐진 사람 취급을 받는다. 예전에 삐삐, 휴대폰이 그러했듯이, 이제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 SNS)가 소통의 중심에 서 있다. 소셜 네트워크는 한국말로 ‘사회 관계’쯤에 해당하는데, 정말로 이것이 사회 관계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 자체도 변화시키고 있다.
SNS는 대개 오프라인의 친구, 선배, 지인들과의 관계를 온라인에서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기억의 저편에 있던 학연(學緣), 지연(地緣), 혈연(血緣)이 오프라인에서는 다시 ‘친구’가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쫓고 쫓긴다(following and followed). SNS 이용자들은 자신의 취향, 업적, 능력에 대한 글을 쓰고, 온라인 친구들은 이를 공유함으로써 친분을 쌓는다. SNS 이용자들은 서로 관리된 이미지와 허세를 ‘좋아요’라고 말해줌으로써 사회 관계를 유지하고, 타인의 나르시시즘을 프로파일링한다. 허세이든 자기과시이든, 생각과 취향이 다른 주변사람보다,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SNS가 매력적인 소통의 수단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SNS는 표면적으로 개인들 간 소통의 장이지만, 사실상 1 대 1의 관계라기보다 1 대 다(多)의 양상을 보인다. 이는 일종의 이미지 관리 혹은 자기과시인데, 예쁜 얼굴이나 특별한 취향, 멋진 글쓰기 재주 등 과시할 거리가 없을 때는, 최소한 찌질함이라도 과시한다. 최근의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한국 내 SNS 이용자들은 이미지를 관리하는 이유로 ‘기록이 남기 때문에‘(41.6%), ’원치 않는 사람들도 내 SNS를 알고 있어서‘(22.1%), ’누군가 훔쳐보고 있을 것 같아서‘(14.5%) 등을 꼽았다. 누군가가 볼까봐 걱정되고, 그런것들이 기록으로 남을까봐 걱정되기 때문에 SNS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소통이 결여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SNS를 하는 것일까? 소위 사회 생활이라는 것에서 느끼는 ‘관계’의 피곤함을 왜 온라인의 세계에서까지 경험해야하는 것일까? 매튜 프레이저와 수미트라 두타는 『소셜 네트워크 e혁명』이라는 책에서 이런 행동의 이면에 뿌리깊은 사회학적 동기가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한 사람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며, 사회적 지위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공고히 하려는 개인들의 욕구가 그것이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SNS의 핵심은 친목 도모라기보다 이를 통해 인맥을 강화하고 확대하는데 있다. SNS에 표시되는 숫자로 내가 가진 인맥의 크기와 깊이를 알 수 있고, 심지어 그 관계들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저울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1년에 한번 만날까 말까한 사람일지라도 온라인 상에 친구가 많다는 것은 내가 인기인이며, 그만큼 큰 사회적 영향력과 권력을 가진다는 말이다.
진짜 과시와 허세는 이 숫자를 늘리는 행위에 집중하면서 시작된다. 친구 수를 늘리는 방법은 다양한데, 일단은 스스로를 포장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초보자들은 다른 사람의 글이나 사진을 자신의 것인양 도용하는 행태를 보인다. 재밌는 것은 대부분 온라인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기회주의적 행위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쁜 그림과 좋은 노래로 미니홈피를 꾸미는 것의 일환으로, 남이 만들어낸 그럴싸한 것들을 잘라 붙여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장식한다. 숫자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가짜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소극적으로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까지 ‘친구’로 삼는데, 이 경우 SNS에서 친구는 친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전적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게 된다. 보다 적극적으로, 가짜 계정을 만들어 스스로를 인기인으로 만드는 방법도 사용된다. SNS가 소통으로서의 기능을 대부분 상실하고, 이미지 관리와 자기과시의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인 SNS 사용자의 경우에도, SNS가 사회 관계를 확대시킬 수는 있지만, 오히려 관계의 정도는 느슨하게 만드는 경향이 나타난다. 언제든지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지금 소통하지 않아도 됨을 의미하고, 쉽게 닫아버릴 수 있는 미니홈피 만큼이나 관계를 끊는 것도 쉬워진다. 무엇보다 친구가 점차 늘어갈 수록, 정작 내가 소통하고, 공유하고, 영향력을 과시하고자 했던 친구들 역시 온라인 상의 ‘친구’ 중 한명에 불과하게 되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사회 영국의 인류학자 로빈 던바의 이름을 딴 “던바의 법칙”에 따르면, 친한 친구 모임의 인지적 한계는 약 150명 정도이며, 사실상 강도 높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핵심 친구 집단은 12명이 넘지 않는다. SNS 친구들은 12명과 150명 사이, 혹은 150명 바깥에 존재한다. 정말로 하고싶은 말, 많은 것을 공유하는 친구, 진짜 사회 관계는 여전히 SNS 밖 1 대 1의 세계에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가입자가 6억명에 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SNS가 혁신적이고 매력적인 소통 수단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방법이 어찌되었든, SNS의 세계에서는 유명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수 천명에서 수 만명의 친구를 가질 수 있다. SNS를 사회 관계 형성의 주된 수단으로 사용하는 시대가 도래하면, ‘지구는 둥그니까 앞으로만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만나게 되겠네’라는 동요가사가 ‘온라인 세상은 넓으니까 친구만 맺어 나가면‘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세상이 달갑지 만은 않다.
더 읽을거리
+ 책. ‘소셜 네트워크 e혁명’ 매튜 프레이저, 수마트라 두타. SNS와 관련된 대부분의 책들이 벼락 부자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 비해, SNS의 사회학적 의미를 상세히 분석한 책이다. 영화 『소셜네트워크』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추천.
+ 드라마. ‘전차남(電車男)’ 한때 모든 오타쿠들에게 헛된 희망을 안겨준 드라마. SNS의 초기 형태에 해당하는 PC 통신 ‘친구’들의 느슨한 관계에서, SNS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