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축구는 가장 보편적인 스포츠이며, 월드컵은 지상 최대의 축제로서의 면모를 자랑하고 있다. 축구의 역사가 인류 유희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근대적 스포츠로서의 축구는 영국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통념이다. 중세시대 영국의 ‘매스 풋볼’(mass football)은 말 그대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공 하나를 빼앗기 위해 뛰어다니는 것으로, 특정한 규칙과 규정이 없는 난폭하고 거친 경기였다. 중세 전/후에 하층민을 중심으로 대중적인 축제의 일환으로 행해지던 것이 산업화시기 노동자 계층의 우회적인 사회 불만 표출의 한 방법으로 재등장하기도 했다.
화해와 소통의 녹색 그라운드 근대적 스포츠로서의 축구는 매스 풋볼과 달리, 많은 규칙에 바탕하고 있다. 산업혁명이후 부르주아 계급이 스포츠를 미덕 함양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면서 이러한 규칙의 기초가 마련되었는데, 스포츠를 매너와 페어플레이 정신, 규칙 준수 등과 같은 일련의 부르주아적 미덕을 함양할 수 있는 교육의 도구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는 일리어스(N, Elias)가 말한 ‘문명화’(civilizing process)이자 ‘여가의 온순화’(pacification)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데, 즐거움을 추구하는 방식이, 인간에게 잠재된 원초적인 감정을 임의적/충동적으로 분출하는 것이 아니라, 통제되고 순화된 형태로 전환된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축구에 ‘폭력성과 야만성의 감소’나 ‘부르주아적 매너의 함양’ 이상을 의미하는 규칙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옵사이드(offside)를 들 수 있는데, 골을 넣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스포츠에서 “공격수가 수비수보다 더 골대에 가까이 있을 때, 공격수에게 패스해서는 안된다”는 모순적인 룰이다. 나카무라 도시오는 오프사이드는 그것이 정당하지 못한 행위라는 공통의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즉, 특정한 종류의 공통된 ‘정의감’이 규칙으로 반영된 결과인 것이다. 오늘날 축구 규칙은 여전히 많은 부분을 심판과 관중의 판단에 의존하고 있다. 헐리우드 액션에 경고를 주는 스포츠가 축구 외에 또 있던가? 나아가 경기 외적 규칙에 해당하는 경기장의 위치, 좌우너비나 길이에 대한 규정 역시 상당히 유연한 편이다. 축구에서 이러한‘다름’은 ‘홈 어드벤티지’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여진다. 지역/종교/민족/인종/국가, 심지어 장애도 축구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승리와 패배가 있는 경쟁적인 스포츠이지만, 축구라는 텍스트 속에는 공정성/정당성/다양성과 같은 공통의 정의감이 반영되고 있다.‘페어플레이’(fairplay)는 이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구호이다.
페어플레이 없는 세계 그러나 막상 축구를 둘러싼 세계에서 이러한 정의감을 발견하기는 힘들다.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간 ‘축구 전쟁’의 예처럼, 축구는 기존의 갈등을 재생산하고 폭력적으로 분출하는데 사용되었다. 근래에는 이러한 갈등 구도가 상업적으로 이용되면서 고착화되는 경향도 보인다. 축구가 상업화되면서 경제적 계층이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축구가 꿈과 희망을 준다고 하지만, (솔까말) 월드컵은 비행기를 타고 경기장에가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일부 사람들 또는 TV 광고가 잠재적 소비자로 간주하는 사람들에게만 진정한 ‘축제’일 뿐이다. 월드컵은 세계 최대의 축제라기보다, 세계 공통의 문제들이 집약적으로 표출되는 이벤트이다. 축구 산업과 관련된 저임금 노동, 전반적인 남성중심성, 세계 최대의 국제기구인 피파 내/외부에서 발생하는 권력투쟁과 축구관련 기구들의 비민주적 성격, 투어리즘에 따른 환경파괴 등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문제는 축제라는 비일상적 공간 속에서 정치적 이성이 집을 나가고, 심지어 스포츠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이 고려되지 않아야한다고 생각된다는 점이다. 페어플레이는 그라운드 위에서만 적용될 뿐, 그라운드를 한 발짝만 벗어나면 불평등/불공정/불균형이 축제를 벌이고 있다. 유네스코(UNESCO)는 “평화와 발전을 위한 스포츠”(Sport for Peace and Development)를 진행해왔다. 유네스코는 스포츠 행위가 지리적 경계와 사회적 계층을 넘어 평화를 증진하고, 사로 다른 지리, 문화, 정치적 맥락들 간에 사회적 통합과 경제적 발전을 향상시키는데 주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UN 총회는 2009년 12월 체결된 A/RES/64/5 결의안에서 월드컵과 같은 대규모 스포츠 이벤트가 개발과 평화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으며, 또 해야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남아공 월드컵 공연에서는 “모두를 위한 교육에 한 골”(One Goal, Education for All)이라는 보다 실천적인 메시지도 제기되었다. ‘스포츠 정신’은 스포츠의 정치적 이용에 반대하지만, 이제 전 지구적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의미로 재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녹색의 그라운드는 꿈과 희망을 주는 소통과 화해의 장이어야 한다. 가장 세계적인 스포츠로서 축구는 가난한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관중들에게 재능/협력/페어플레이 정신에 바탕한 감동의 드라마를 선사해 준다. 우리는 축구 경기라는 텍스트에서 공통의 정의감을 발견하고 소통과 화해의 가능성을 찾는다. 이 부정의한 세계와 현실 속에서, 감동의 드라마를 본다. 이제 리오넬 메시가 축구공을 만든 어린 노동자를 위해 세레머니를 펼치고, 붉은악마가 세계 평화를 생각하는 카드섹션을 펼치는, 그런 녹색의 그라운드를 상상해볼 때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더 읽을거리
+ 책. ‘오프사이드는 왜 반칙인가?: 근대 축구 탄생의 사회사’ 나카무라 도시오 “축제는 거기에 참가하여 먹고 즐기는 모든 사람들이 막연한 경로를 통해 그 곳에 가득 찬 어리석음에 감염되는, 신분과 지위의 상하를 가리지 않는 주연(酒宴)의 시간이다.”
+ 논문. ‘축구와 노동계급’ 정준영 “축구는 기본적으로 ‘약자가 강자를 언제든지 이길 수 있는’ 속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노동자 계층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