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가 장래희망인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고려해야한다. 여러분이 사람/외계인/돌연변이/기타 무엇인지는 상관없으나, 단지 약간의 (초)인적인 능력과 강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슈퍼히어로는 심히 부끄러운 복장에, 연봉/성과급/4대보험 무엇하나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 가혹한 환경 속에서 밤낮없이 활동해야 한다. 대부분의 슈퍼히어로는 오늘도 평범한 도시인으로 살아가면서, 눈물을 훔치며 하늘을 날고 있다. (쵸코크림롤스의 ‘클라크’를 들어보라!)

위험한 슈퍼히어로 그러나 그 능력 때문에 슈퍼히어로는 가장 자유로운 존재임과 동시에, 동경과 의존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슈퍼히어로 못지 않게 자유로운 존재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영원한 라이벌, 슈퍼빌런(Supervillain)이다. 슈퍼히어로와 슈퍼빌런은 주로 선과 악 또는 정의와 부정의의 대립구도 상에서 이해되며, 이 대립에 정치이데올로기가 반영되기도 한다.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30년대에 탄생한 캡틴 아메리카와 슈퍼맨의 경우, 기본 스토리 상의 슈퍼빌런 외에 나치가 악당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공산주의, 독재국가, 테러리즘 등으로 대상이 바뀌긴 했지만, 이러한 경향이 어느정도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정의인가?’를 묻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슈퍼히어로와 그의 정의를 의심하는 시선도 늘어났다.박민규는 그의 소설 “지구영웅전설”에서 슈퍼맨, 베트맨, 원더우먼 등을 미 패권주의 이데올로기와 미국인/백인/남성/자본가의 정의를 선전하고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로 묘사한다. 마초적이며, 제국주의적이라는 비판은 아직까지 슈퍼히어로들이 짊어지고 있는 멍에이다. 그리고 그들이 지키고자 노력했던 정의의 기반이 약해지면서, 고독하게 고군분투하던 슈퍼히어로들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본질적으로, 슈퍼히어로는 슈퍼빌런과 마찬가지로 지구의 안전과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이다. 이는 슈퍼히어로가 ‘악한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선하다고 할 수 없는 목적’을 갖고 폭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슈퍼히어로는 그들이 가진 특수한 능력에 바탕하여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완전하게 영위하지만, 바로 그 ‘자유’ 때문에 위험한 존재가 된다. 결국 엄청난 자의적 폭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슈퍼히어로는 그 라이벌인 슈퍼빌런은 위험한 존재이다. 특히 어느 한쪽이 ‘절대 선’이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 두 라이벌은 단지 서로 대립하는 가치를 고집하는 괴물일 뿐이다.

진정한 슈퍼히어로 이 때문인지, 최근의 슈퍼히어로들은 자신들을 절대 선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소위 포스트모던 슈퍼히어로는 슈퍼빌런들이 저지른 ‘명백한 악행’에 대한 반작용 역할을 수행하는데 만족하고 있다. 즉, 슈퍼빌런이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무고한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에 반해, 슈퍼히어로는 ‘일부의’ 무고한 사람들을 이기적 폭력으로부터 구제하는데 만족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폭력의 정도와 범위,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 비례성(Proportionality)등과 같은 군사 작전적 개념에 바탕해 슈퍼히어로와 슈퍼빌런의 차이를 나타내기도 하는데, 이는 간단히 말해, 슈퍼빌런이 슈퍼히어로에 비해 더 큰 악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도구적 기준이 ‘과연 누가 진정한 선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는 없다. 슈퍼히어로와 슈퍼빌런, 이 둘 모두는 여전히 국가 권력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국가라는 ‘리바이어던’을 쓰러뜨리고 자신이 그 자리에 앉을 수도 있는 존재이다. 심지어 슈퍼히어로와 슈퍼빌런의 외형을 맞바꿔 우리의 편견을 조금 굴곡시켜 생각해보면, 적극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혁명가 슈퍼빌런과 그것을 매번 방해하는 슈퍼히어로의 구도로 읽혀질 수도 있다. 고대의 ‘성공한’ 영웅들은 어쩌면 슈퍼빌런의 모습에 더 가까울 것이다.인간과 공존하려는 뮤턴트와 인간을 지배하려는 뮤턴트 간의 갈등을 다룬 X맨에서처럼, 목적의 선악 여부와 관계없이,평범한 인간들에게 그들의 존재 자체가 위험이며, 공포의 대상이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슈퍼히어로와 슈퍼빌런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즉, 슈퍼빌런이 ‘지구 정복’이나 ‘우주 정복’과 같은 지배를 꿈꾸는데 반해, 슈퍼히어로는 이에 저항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그들의 활동양식에서도 나타나는데, 지배하려는 욕망에 충실한 슈퍼빌런은 주로 추종자를 모아 그 세력을 조직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반해, 슈퍼히어로들은 ‘지하’ 또는 단칸방’에 홀로 지내는 경우가 많다. 슈퍼히어로가 지배를 추구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지배층이거나 지배층의 이익을 대변하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초능력자/외계인/돌연변이로서 슈퍼히어로의 태생적 고독은 슈퍼빌런과 닮아있으며, 심지어 아이언맨이나 울버린과 같이 일종의 ‘원죄’를 안고 있는 경우도 있다.다만 그들은 슈퍼빌런과 달리, 이러한 근원적 고독을 ‘권력에의 의지’나 ‘지배에의 욕구’로 해결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슈퍼히어로에 대한 우리의 열광 속에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엄청난 능력과 그 능력에 바탕한 자유에 대한 동경이 묻어있다. 그러나 ‘자유에 대한 동경’의 중심에는 그 자신의 자유로운 폭력으로 리바이어던의 자리를 대체하거나, 메시아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자유’를 강제하고, 지배하려 하지 않는 슈퍼히어로의 모습이 있다. 슈퍼히어로들이 공유하는 단 하나의 정의가 있다면,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절대적인 존재로 군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슈퍼히어로의 존재 자체에 역설로 다가와, 최근에 많은 슈퍼히어로들이 번민에 빠져있다. 그러나 그러한 고민과 번민이야말로 슈퍼히어로를 진정한 자유의 수호자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여러분, 초인(Ubermensch)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보고 읽을 것

+ 책 ‘슈퍼 히어로 미국을 말하다: 슈퍼 히어로를 읽는 미국의 시선’ 마크 웨이드 외. 슈퍼히어로를 다양한 시각에서 분석한 것으로, 실존주의, 형이상학, 도덕철학 등에 바탕한 해석 이 흥미롭다.

+ 블로그 ‘부머의 슈퍼히어로’ 부머(boomer27). 슈퍼히어로에 관한 광범위한 지식을 담고 있는 블로그로, 중요한 해외 자료들을 번역한 내용도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