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Haiti)의 부두교 전설에서 시작된 좀비는 간단히 말해 ‘걸어다니는 시체’ 같은 것으로, 아이티의 부두교 주술사가 장님도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도 벌떡 일어나게 한다는 그들의 주술로 죽은 사람을 살려낸 것이다. 아이티의 좀비는 주술사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에서 강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괴물이지만, 이 괴물이 서구의 이야기, 특히 헐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면서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된다. 거의 대부분의 괴물-공포영화와 마찬가지로, 좀비 영화 역시 “이 영화는 픽션이니 특정 인물 혹은 단체와 아무런 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런 괴물은 없사오니, 편안한 관람되시길 바랍니다”라는 식의 ‘리얼함’으로 “인간이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지 않다”는 공포를 편안하게 제공해준다. 그러나 좀비 영화는 사실 이보다 훨씬 공포스러운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것은 좀비가 인간과 삶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좀비는 분명 죽음을 넘어선 존재이지만, 다른 괴물들처럼 특수한 능력을 지닌 것도 아니고, 분명한 자의식도 없다.보통 집단적으로 인식되는 ‘좀비들’은 음침한 곳에 숨어있다가 손을 휘저으며 천천히 걸어다니며, 고작 할 수 있는 말이라고 해 봤자 “우~우우~” 정도 밖에 없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좀비는 분명 공포스러운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인간보다 하등한 존재로 인식된다. 그러나 인간을 잡아먹으려는 단 하나의 근원적 욕망에 의해 추동되는 단순한 존재인 좀비가 인간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그들이 집단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요즘 좀비는 앞서 어떠한 이성적 판단 없이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사람 혹은 집단을 가리키 용어로 사용된다.
도망칠 곳 없는 욕망 좀비의 욕망은 그 정도와 지속성에 있어서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나 인간을 잡아먹으려는 좀비의 욕망은 그들의 존재 이유라고 할 정도로 강력하게 그들을 지배하지만, 사실 어떠한 방식으로도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다.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 욕망은 좀비가 단 하나의 욕망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불사에 가까운 존재라는 점에서 더 증폭된다. 즉, 인간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욕망을 일시적으로나마 충족시킬 수도 없고, 심지어 이미 죽음을 극복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연적 죽음을 통해 이 욕망이 끝나지도 않는 것이다. 좀비의 끝을 알 수 없는 욕망은 그들이 최후의 한 인간을 잡아먹을 때까지 계속되는데, <레지던트 이블>을 비롯한 액션 공포물에서와 같이, (여러 가지 의미에서) ‘죽여주는’ 전사가 좀비를 다 없애고 인류를 구하지 않는 이상, 좀비는 모든 인간이 좀비가 되는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여기서 <28일 후>나 <나는 전설이다>와 같은 영화에서 ‘마지막 인간’의 고군분투가 그려내는 섬뜩함과 끔찍함이 증폭된다. 좀비에게 잡히게 되면 죽거나 좀비가 되는 상황에서, 최후의 인간은 끝을 알 수 없는 좀비의 추격으로부터 도망친다. 인간에게 좀비의 존재 자체도 큰 공포이지만, 끝없는 좀비의 직선적인 욕망 때문에, 무엇으로도 이 상황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 더 크고 근원적인 공포를 제공하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 쫓겨 도망치는 인간의 모습은 사실 차라리 잡아먹히거나 좀비가 되는 편이 낫다고 생각될 정도로 절망적이지만, 최후의 인간은 언제나 좀비가 아니라 ‘인간으로’살아가려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어쩌면 인간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몸부림의 반대편에 있는 좀비들의 욕망은 되돌릴 수 없는 인간성에 대한 갈망일지도 모른다. 아이티의 좀비가 주술, 즉 초 자연적이고 미신적인 힘에 바탕하여 시체를 살려내는 것에 반해, 오늘날 영화 속에서는 살아있는 인간이 생체실험, 질병, 감염 등에 의해 ‘좀비화’되기도 한다.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연구와 실험이,욕망을 해소시키기는커녕 더 크고 근원적인 욕망을 낳아, 이제는 좀비가 된 인간들이 스스로 인간성을 말살시킨 것이다.이 커다란 욕망의 덩어리가 최후의 인간성 마저 다 삼키고 나면, 이 욕망의 덩어리는 어디로 가게될까? 좀비들은 영원하고 끝없는 욕망이 영원토록 충족될 수 없는 상태에 처하게 되고, 이는 지구가 멸망하거나, 자연이 그 위대한 힘으로 좀비들을 없애는 그 순간까지 지속될 것이다.
인간으로 살아남기 좀비 이야기는 어쩌면 좀비 대 인간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 세상에 대한 이야기 혹은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다. 어쩌면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꿈을 쫓아가는 당신과 당신에게 정신차리라며 손가락질하는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으며, 인간 같지 않은 것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와 관련된 이야기일 수도 있으며, 인간답게 살기 힘든 세상에서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 일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근대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최후의 인간’ (last man)과 그것에 사력을 다해 맞서는 ‘초인’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끔찍한 좀비들로부터 힘껏 도망치고 그것에 맞서야 할 주인공이 바로 당신일지도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간으로 살아남는 것이 좀비로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는 점이다.
보고 읽을 것
+ 영화 ‘28일 후’ 대니 보일 감독, 2003 영국의 한 영장류 연구시설에서 ‘분노 바이러스’가 유출된 28일 후,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었던 한 남자가 텅 빈 병원에서 깨어나면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좀비 대 인간이라기보다 인간 자체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포의 새로운 차원을 여는 하이 쇼크 호러!”라는 포스터 문구에서처럼 다소 ‘하이 쇼크 호러’한 영상이 있지만, 이 사람이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감독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일반적인 ‘좀비 액션물’이 아니라는 점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헐리우드 자매품 ‘28주 후’가 있으며, 후속작 ‘28개월 후’가 2011년에 개봉 예정이다.
+ 책 ‘위험한 생각들’ 존 브록만 엮음, 2007 ‘세계 지식의 지휘자’라는 다소 이상한 수식어가 붙는 존 브록만이 엮어낸 ‘위험한 생각들’에는, 로버트 샤피로, 헬렌 피셔, 리처드 도킨스 등 대충 이름은 들어본 것 같은 석학들의 짧지만 흥미로운 생각들이 담겨있다. 석학들 간의 토론을 위한 엣지재단(Edge Foundation, Inc.)의 회장이자 웹사이트 포럼 엣지(www.edge.org)의 설립자인 존 브록만처럼 엣지있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교양서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