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시작하기 좋은 날이 따로 있을까? 예컨대 두 나라 사이의 캐캐묵은 감정들이 어느날 갑자기 '펑'하고 터져버려 선전포고와 함께 국경을 넘었던 그 어떤 날처럼. 하필 그 날이었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 하필 그 때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을까? 그 날 두 나라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계, 서로를 향한 적대가 이마를 맞대고 만들어낸 국경을 처음으로 밟고 지나간 장군은 이렇게 생각했을까? "아, 진짜, 전쟁하기 좋은 날이다!"

아니 정말. 무언가를 시작하기 좋이 날은 따로 있을까? 내 몸에 차곡차곡 쌓아왔던 군살이 '펑'하고 임계점을 넘어 바지 밖으로 터져나온 그 날도. 애써 보려하지 않으면 안 볼 수 있었기에 외면해왔던 정수리 탈모가 가족사진의 중심을 차지한 그 날도. 온갖 질환에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온 내 얼굴을 보고도 "잘 지내셨죠?"라고 말하는 동네 주치의가 한 번에 먹지도 못할만큼의 약을 지어준 그 날도. 확실히 "좋은 날"은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계속 미뤄왔다. 그럴일은 없겠지만 내 자서전이 나온다면 반드시 한 귀퉁이를 차지하게 될 격언들처럼. "오늘 일은 내일로 미뤄라!" "죽음의 순간에는 하지 못한 일보다 못 먹은 밥이 생각날거다!" "오늘 당장 안죽고 50년 뒤에 평화롭게 죽을 것처럼 살아라!"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연인들처럼 비만, 탈모, 스트레스, 각종 질병과 의 관계를 질척질척 유지해왔다. 그들과의 이별은 '선전포고'만큼이나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졌다. 캐캐묵은 감정들에 올라타서 "저놈들을 용서하지 맙시다!"라고 외치는 것과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가는 건 전혀 다른 종류의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몇 년 묵은 나의 적들이 얼마간의 현금과, 생계와, 그것에 기대고 있는 가정의 평화를 보장해준다는 점에서 나는 그들의 노골적인 적대행위를 묵인해왔다. 그들은 나의 삶을 단축시키려하고, 나는 나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모순적 상황 위에서, 우리는 적대적 동반자였고,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나는 뚱뚱하고 대머리이면서 병약하기까지 한 중년 아저씨로서의 삶을 받아들였고, 아주 가끔은, 죽지 않을만큼 간질간질하게 고통스러운 이 삶이 나의 적들에 의해 다소나마 단축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얼마 간의 위안을 찾기도 했다.

그러다 선전포고를 해버렸다. '어느날 갑자기!'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 대충 두 달 정도는 걸린 것 같다. 매달 통장에 찍히는 숫자들과 맞바꿔버린 '삶'을 되돌려 받기로 결심하기까지. 삶과 돈의 등가교환이 무너진지 한참이었고 돈 봉투가 무거워질수록, 삶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워졌다. 선전포고의 순간에는 "우리 아이와 헤어져!"라며 표독스럽게 돈봉투를 던지는 막장드라마의 시어머니라도 된 기분이었다. 물론 그 돈이 잉여자본이 아니라 생활비라는 점에서 나의 현실이 좀 더 막장이었다. "나와 헤어져 줘, 뚱땡이 대머리 병약 중년 아저씨야!"

아무튼 그렇게 현금과, 생계와, 그것에 기대고 있는 가정의 평화를 집어던지고 '삶'을 찾아왔다. 아니 '가정의 평화'까지는 아직 집어던지지 않고 손에 쥐고 있다. 평화에는 돈이 들지만, 돈이 있다고 평화가 보장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으로, 돈이 적게 드는 평화를 찾아보고 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보고, 오래된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거실에서 속옷만 입고 운동하고, 시장에서 산 재료들로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고, 동네 빵집에서 산 빵으로 샌드위치 도시락을 싸고, 하루 세 통씩 물을 마시고, 커피보다 차를 즐기려고 노력하고, 맑은 날에는 햇살을, 비 오는 날에는 빗소리를 베란다에서 감상하고, 예쁘고 즐거운 것을 많이 찾아보고, 아이들과 화내지 않고 놀아주고, 미세먼지가 없는 날은 다 같이 산책도 나가는... "가난한 삶", 아니, "가난하지만 존엄한 삶".

오랫동안 전당포에 맡겨두고 찾아가지 않은 물건마냥, 되찾아온 나의 삶은 어딘가 구깃구깃하고 여기저기 때가 타있는 어색한 모습이다. 하지만 바로 이 삶이 13,000일도 넘은 내 인생에 다시 한 번 찾아온 "Day 1". 지금부터 조금씩 제 무게를 찾아갈 '내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