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는 늘 죄송하다.

낼 돈을 못 내 죄송하고, 폐를 끼쳐 죄송하다.

하지만, 가난 이전에 삶이다.

삶은 어떤 경우에도 감사할 뿐 죄송하지 않다.

지난달 26일. 내가 머무는 일본 센다이는 오랜만에 맑았다. 서울은 사흘째 미세먼지로 곤욕을 치렀다는데. 체코인 친구는 선물로 받은 다코야키 기계를 한번 써봐야겠다며 나를 보챘고, 그 덕에 낮부터 장 보러 시내로 나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기에 충분한 날씨였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30년 만에 군대의 낡은 수통이 바뀌게 됐다는 기 분 좋은 뉴스도 읽었다. 저녁엔 한국, 일본, 체코, 독일, 파키스탄, 프랑스에서 온 친구들과 다코야키 파티를 벌였다. 축구팀 올림피크 드 리옹의 원어민 발음(“올리히크디홍” 비슷한 느낌이었다)을 따라 하는것만으로 배가 아플 정도로 웃어댔다. 즐거운 파티였으나 평생 기억에 남을 만큼 특별하진 않았다. 행복하고도 평범한 날이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2월 26일의 장면을 이토록 뚜렷이 기 억하는 건, 바로 그날이 서울 송파구에서 세 모녀가 세상을 떠난 날이었기 때문이다.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달리 남길 말이 없었을 리 없건만, 세 모녀가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것이 전부였다. 죄송하다는 메모 옆에는 현금 70만원이 든봉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 자매는 요즘 한국이 세계에서 제일 잘 만든다는 스마트폰과 카카오톡을 쓸 여유가 있었을까? 일년에 영화 한 편 보고 신문 구독은 할 수 있었을까? 친구와 만나서 카페에서 한 잔에 5000원 하는 커피를 마음 편하게 마실 수 있었을까? 평범하게 한다해도 수천만원 드는 결혼식을 꿈꿀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들 자매의 생계를 홀로 책임지면서 식당일을 했던 어머니의 삶의 무게는 어떤 것이었을까?” 지인이 페북에 남긴 글은 내 평범한 2월 26일과 겹쳐지며 더욱 비극적으로 다가왔다. 카페에 있을 때였을까, 아니면 다코야키를 구우며 “올리히크디홍”을 따라 했을 때였을까. 아무튼 그 어느 순간세 모녀는 고통스러운 삶을 끝내는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평범한 삶, 아니 언젠가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거란 희망조차 없는 상황이었으리라.

특별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글을 쓰는 이순간에도 지구 어딘가에서 누군가 비참한 죽음을맞이할 게 분명하다. ‘항상 그런 생각을 한다면 일상생활이 가능하겠나.’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그럴수 없었던 건 “죄송합니다”라는 마지막 말 때문이었다. 차라리 빌어먹을 세상에 욕이라도 시원하게내뱉었으면 좋았을 텐데. “정말 죄송합니다”라니. 그 말이 한동안 가슴을 짓눌렀다. 가난하다는 것이어찌 죄송할 일인가. 그들의 죽음에 누군가는 무관심한 이웃을 탓하고 누군가는 허울뿐인 정부의 복지정책을 탓하지만, 정작 그들은 그 무엇도 탓하지않았다. 그래서인지 내 울분은 향할 곳 없이 한동안응어리져 있었다.

어째서인지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이해할 수있을 것만 같았다. 나도 가난하다는 이유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 소년을 알고 있다. 소년은 어느 날 갑자기 친척 집에 맡겨졌다. 부모님의 사업이 망했다는 흔하디흔한 이유였다. 초등학교 시절 급작스런 전학으로 어느 쪽 졸업 앨범에도실리지 못했다. 소년은 자신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물질처럼 느껴졌다. 매번 보충수업을 못 받는 이유, 준비물을 못 산 이유, 부모님을 모셔올 수없는 이유를 말해야 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해야했음은 물론이다. 시간이 흘러 겨우 눈물을 비추지않게 되었지만, 여전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체념한 듯 말할 수밖에 없었다.

중2병의 시기에 이르러 소년은 세상과 삶 자체에무관심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소년이 다니던 중학교에는 소년과 마찬가지로 불우한 친구들이 많았다. 불우는 종종 불량으로 옮아가기도 했다. 어찌 되었건 그 친구들만이 세상과 소년을 이어주는 유일한 연결 고리였다. 중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상황은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돈 들어갈 곳이 많아졌고 그만큼 자주 죄스러운 가난에주눅이 들었다. 교복은 물려받으면 됐고, 배식 담당을 하면 급식을 먹을 수 있었기에 의식주는 어찌 해결됐다. 그러나 몸에 맞지 않는 낡은 교복이 부끄러웠고, 남은 반찬이 없어 밥과 국만 먹는 날은 어쩐지 벌을 받는 느낌이었다. 문제지 살 돈을 아끼기 위해 “죄송합니다”라는 말과 바꿔온 교사용 문제지는 이상하리만치 무거웠다.

시간이 흘러 소년은 다시 부모와 함께 살게 되었다. 이층짜리 단독주택, 대문이 아니라 그늘진 쪽문으로 들어가 집을 반 바퀴쯤 돌아 들어가야 나오는 단칸방. 당시에도 흔치 않던 연탄보일러였다. 평범한삶을 바랐지만 상황은 쉽게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않았다. 가난이 병을 불러오기도 했고, 병이 가난을불러오기도 했다. 소년의 어머니는 이미 병이 깊어몇 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고, 소년의 아버지 역시무리한 탓에 여러 차례 쓰러져야 했다. 죄송하다고말해야 살아갈 수 있는 나날이 갑자기 끝난다 해도소년은 슬프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어코 일이 터졌다. 한밤중에 급히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일어났더니 영문도 모르고단칸방 밖으로 뛰쳐 나가야 했다. 말로만 듣던 연탄가스 누출이었다. “일가족 횡사할 뻔했다”라는 말이 머릿속을 빙빙 돌았다. 며칠 후, 소년은 아프리카 어느 나라 소년에 관한 영상을 보았다. 아프리카소년은 내전으로 부모를 잃고 동생과 함께 몇백 킬로미터를 걸어서 도망쳤다고 한다. 험난한 여정 가운데 동생과 친구, 그리고 자신의 한쪽 다리를 잃었다. 영상 말미에 그는 어색한 듯 의족을 만지더니카메라를 향해 “감사합니다”라며 활짝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을 본 후 소년은 알 수 없는 감정에 눈물을펑펑 쏟았다. 소년이 그 웃음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것은 한참 뒤의 이야기다.

상투적이라면 상투적이겠지만 죽을 뻔한 경험 이후소년에겐 앞으로 남은 삶이 보너스처럼 여겨졌다. 기왕이면 행복해지자고, 좋은 사람들, 좋은 것들을많이 만나고 즐기자고 생각했다. 더 “죄송합니다”라며 고개 숙이기보다 “감사합니다”라며 활짝 웃어줄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다. 소년은 이제 더이상 가난하다는 이유로 죄송하다 말하지 않는 청년이 됐다. 대신 누구도 죄송하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바로 그 청년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누구에게나 나의 2월 26일 같은 평범한 삶이 주어지기를 희망하면서 말이다.

‘우리의 삶에는 시간의 점이 있다. 이 선명한 점에는 재생의 힘이 있어 이 힘으로 우리를 파고들어 우리가 높이 있을 땐 더 높이 오를 수 있게 하며, 떨어졌을 때는 다시 일으켜 세운다.’ -윌리엄 워즈워스-